천사의 깃털

@the range

by Peter Shin Toronto

한참을 걸어올라온 페어웨이엔 신선한 깃털들이 사뿐히 앉아 있었다. 천사가 너무 황급히 하늘로 오르느라 그의 날개 깃들이 몇개 떨어져 버린 게 분명하다. 깃털이야 뭐 금방 다시 돋아 나겠지. 천사는 역시 존 트라볼타 표 천사가 제격이다. 젖은 강아지가 제몸통을 마구 흔들어 물을 털어내듯 깃털들을 이리 저리 날리며 꾸역 꾸역 하늘로 되돌아 갔을진데

철새의 깃털을 보며 천사를 떠올릴 수 있는 건 순전히 익살맞은 존 트라볼타가 천사 역할로 나온,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 때문이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철새들의 흔적을 보며 난 그저 녀석들이 지구촌을 날아 드나들며 퍼뜨릴지도 모르는 역병이 생각났었을 따름이다. 생명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보며 조류 독감이나 구제역과 같은 pandemic 역병이 떠 올려 진다는 사실은 참 서글픈 현실일텐데 다행히 난 천사를 떠올렸다. 깃털을 보니 사람 좋은, 너무 좋아 좀 바보같아 보이는 탐 행크스의 포레스트 검프 역시 떠 올랐다.

잡초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아니 터무니 없을 정도의 생명력을 가진 야생풀들을 그저 잡초라 칭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마치 수생식물 처럼 물 속에서도 저리 잘 자란다. 그들의 생명력에 경의를 보내며 찬양해야 마땅할텐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모양이 아니라서, 또 자신들이 선호하는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항상 이긴다고 보이는 족족 다 뽑아 없앤다. 잡초는 지극정성 보살핌을 당하며 인간들보다 더 비싼 음식을 먹기도 하는 애완동물들 같은 응석이 있을 수 없고, 인간의 보호본능을 자극시키는 아리따운 면도 없으며, 화려한 자태로 제 주인을 뽐내게 하지도 못한다. 학생시절 보안법 위반으로 온갖 고문을 당한 후 무기징역에 처해진 황대권이 감옥에서 쓴 '야생초 편지'를 보면 雜草, 즉 아직 그 가치가 알려지지 않은 풀 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는 감옥에서의 사색을 통해 자신의 신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신체를 이루는 각 부문들의 기능적 조화가 얼마나 신비롭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깊이 깨닫게 된다. 독방에 갖혀 지내면서 그는 쇠창살을 통해 날아드는 한마리의 모기나 파리, 메뚜기등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지, 또 각 개체들이 소우주를 형성하며 생태계의 저변을 조화롭게 이루어 가는 것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며 감사했다. 그는 뙤약볕이 쪼이는 메마른 교도소 운동장 어느 곳에선가 자라 나오는 이름 모를 풀들과 꽃들을 바라보며 그 작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생명들에 관한 일기 형식의 글을 엮어간다. 출소 후 그는 풀뿌리 생태운동가로서 우리의 저변을 이루는 민초성 생태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게 된다. 내가 토론토에서 처음 살았던 집 바로 앞에 토론토 교육청이 있었는데 그곳의 정원에는 저런 잡초들을 그대로 자라게 놔뒀었다. 이후 녀석들이 푸르디 푸른 기운으로 한껏 자라 올라서 갈대 만큼 키가 커졌을때는 그 모습은 마치 정원사가 정성스레 가꿔논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우리는 저 녀석들이 제대로 자라기 전에 제거해버리기 때문에 다 자라고 난 다음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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