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land golf club @ bradford.ontario
아주 특별한 어느 그린. 그 옆에서 자라난 나무엔 이렇게 아름다운 새가 산다. 그리고 그 새는 특별한 손님이 오면 마중과 배웅을 하곤 한다.
그날 내가 그린 위에 올랐을때 녀석은 마치 비행접시 처럼 그린 위를 맴돌며 나를 즐겁게 했다.
제 집 가지에 앉은 모습이 어찌나 의젓하던지.. 반갑고 고맙다 예쁜 새야.
카트는 돌아가시게나. 붉은 배경의 검은 글씨! 비 현실적 원근감과 함께 메시지가 있는 설치 미술 같았다.
그래, 나 걸어서 돌아간다. ㅎ
또다른 그린 위에서 퍼팅 준비를 하는데 그린 잔디 위에 뭔가 커다란 그림자가 움직였다. 직감적으로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거대한 날개를 가진 송골매, Peregrine Falcon 이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어찌나 황홀한지! 여러분들 저빼고 경기 계속 하세요! 하고는 녀석을 계속 바라봤다.
최경주 선수를 보는 듯한 완벽한 스윙의 장타자.오늘의 동반 플레이어 였던 이 훌륭한 선수는 80대 초반을 쳤다. 과묵함 조차 KJ 를 닮았었다. 난 최경주 선수를 그가 유명해지기 전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적이 있었다. 대회 초청을 받아서 가는지 이층 비지니스에 앉았었는데 가는 내내 그 시커먼 얼굴로 부리 부리한 눈만 껌벅이며 아무말도 없이 앉아 있기만 했었다.
아주 이른 아침에 운동을 하다보면 간혹 벙커에 사슴 발자국이 예쁘게 나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린이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경우, 골프백을 매고 낑낑거리며 그린으로 오르다가 멋진 뿔을 가진 송아지 만한 숫사슴이 큰 눈을 껌벅이며 날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대할 때도 있었다. 그럴때면 보기나 더블 보기, 혹은 사진을 찍기 위해 그 홀을 포기하곤 한다. ㅎ
한때는 이렇게 망원렌즈까지 가지고 다녔었다. 또 다른 카메라와 함께! 필드에서는 공을 제대로 굴려야 하는데 공은 팽개치고 저렇게 카메라만 마구 굴리다 보니 나중엔 렌즈가 망가졌다. 올림푸스 E3, 표준 렌즈와 200mm 망원렌즈, 다수의 배터리 그리고 소니 828을 가지고 다녔었는데 한국 여행을 가서 좀 찍다보니 망원이 고장이 났었다. 다음으로 캐논을 가지게 되었는데, 캐논이 한 덩치 하다보니 골프 게임을 하면서 찍기가 좀 성가시긴 하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에일리언들의 거대한 비행접시를 떠올리게하는 구름이 펼쳐지면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골프는 이런 너른 풀밭에서 햇살아래 바람을 맞으며 걷는 맛인 거다. 많은 팀들이 참가하는 토너먼트가 있었던 오늘은 부득이 카트를 타야 하기 때문에 걸어다닐 수는 없었지만 이곳을 날아 다니는 여러 종류의 새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장쾌한 대지의 면모와 변화무쌍한 하늘의 움직임에 한껏 상쾌했다.
바람은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드러낸다.
게임을 하면서 수생식물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호수를 대하는 것 역시 즐거움이다.
카트의 변신은 무죄. 클래식 스포츠 카 모양으로 만든 전동 카트. 제대로 만들어 어설프지 않고 이뻤다.
물 수제비를 뜨는 제비의 모습은 어릴적 이후 처음으로 다시 본다. 아름다웠던 오늘, 멋진 검은 구름들이 잔뜩 몰려오기도 했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햇살이 찬란하게 비치기도 했는데 그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잔디와 풀의 향기가 참 좋았다.
난 이날 좀 알록 달록한 패션이었는데 이날 역시 마구 후려 갈기는 스윙을 하다보니 들쭉 날쭉 일 밖에..
페어웨이나 그린에서보다 이렇게 야생으로 자란 잡풀들이 더 이쁘다. 아무렇게나 솟아 자라나 있는 것 같은 주변의 잡초들이 바람이 불면 저리 아름답게 물결을 이룬다. 비를 맞거나 바람에 흔들릴때 이 풀들은 그들의 싱그러움을 더 한다.
아쉽기 보다는 귀여웠다. 녀석, 반바퀴만 더 구르지..
캐나다 골프장들도 제초제를 쓰긴 하지만 이곳 온타리오 주에서는 아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매년 제초제 사용 보고서를 내놓아야 한다. 한국에선 농약 사용으로 벌써 사라졌던 제비들이다. 어렸을 적 친하게 봐오던 그 제비들이 페어웨이 위를 저공으로 날으며 벌레를 찾는다. 한국도 이제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되면서 제비들이 돌아오고, 가을에 메뚜기들이 난다고 하니 반갑다.
한국에서는 지저귀는 새들과 함께 라운딩 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고, 햇볕이 강렬할때 페어웨이나 그린에서 아지랑이처럼 화학물질의 냄새가 스치곤 했는데, 아마 제초제 였을 것이다. 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 Fairway 나 Green이 깨끗하고 단정할 수록 사용되는 제초제의 양은 엄청날 것이다.
내 골프 이력을 떠올려 보면,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에서 머리를 올렸고, 멜버른에서는 기러기 한마리가 그린에 올라 있는 상태에서 첫 버디를 잡았고, 대만의 포모사 골프장의 거대한 계곡에서는 훼어웨이 우드(wood)로 때리는 기분을 처음 느꼈었다. 열대 중미의 나라들에선 거대한 콘돌 떼들이 갤러리를 형성하며 머리 위 상공에서 선회하는 가운데 즐겼고 동생과 함께한 사이공과 푸켓에서의 라운드에서는 더위에 완전히 녹초가 되면서 더위라는 개념에 대한 갱신(update)이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저 바쁘게 돌아친 기억들 밖에 별 남는 것이 없다. 운동과 재미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회생활과 비지니스의 보조 수단으로서의 골프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회사 회의나 워크샵 중간 중간에 팀웍빌딩을 위해 십여 팀 정도가 나가면서 골프장을 일정시간 동안 전세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기 보조원들의 성화에 쉴새없이 이동하며 때려 대야 했다. 그리고 잘쳐야 했다. 거리가 잘 나지 않거나 OB가 날 경우 심한 자책감과 함께 창피함이 가득 했었다. 값비싼 시간을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린 피를 치르며 왜 이렇게 운동을 해야 되는지 황당하고 짜증날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잠을 설쳐가며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야 했고 돌아올때는 교통 정체에 하루를 다 써도 피곤했던 것이다.
난 캐나다 골프장들의 촌스러움과 여유로움이 참 좋다. 이곳에서도 수백불이 넘는 그린피를 지불해야 되는 프라이빗 코스들은 어느 나라 골프장 보다 수려하겠지만 Semi-Private 이나 Public 골프장들은 그저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한국에서의 formal 한 그늘집 보다는 카트 속에 차가운 맥주를 가득 실고 다니는 발랄한 아가씨에게서 플레이 중간에 사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맛이 좋다. 이후 스코어는 주로 곤두박질 치게 되지만.ㅎ 플레이가 늘어질 땐 가끔 마샬이 나타나 속도를 조절하게 하긴 하지만 정말 문제가 있는 팀일 경우가 그렇고 대부분 여유있게 걸어가며 즐길 수 있는 골프라 최고다. 아주 간혹 듬성 듬성 맨땅이 드러나 있기도 한 그린이 있다 해도 이러한 여유와 바꿀수는 없는거다. 무엇보다 하늘엔 간혹 송골매나 백조가 나르고, 텃새가 우짖고, 딱다구리들이 열심인 이곳의 필드가 좋다. 이른 봄 아직 잠에서 덜 깬든 그라운드 호그가 멍하니 구멍에서 빠져나와 날 바라보는 것도 좋고 거대한 사슴이 한가롭게 필드를 가로질러 숲으로 사라져 가는 걸 구경하는 것 또한 너무 좋다.
It was a good g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