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출신인듯한 맘씨 좋은 인상의 푸짐한 시청 직원 아주머니가 시청 안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 시청 안을 좀 둘러봐도?
- 뭐 별로 볼 게 없어서리.. 민망..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려 2층 주변을 가리키며) 2층에 시장 집무실이 있고, 그저 둘러볼 곳이라곤 2층 정도밖엔..
- 좌간 난 캐나다에서 17년 살면서 한 번도 시청 청사 안으로 들어와 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시민인데 한번 정도는 들여다봐야 하지 않나 해서..
- (아줌마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르며) 와하하하.. 그렇지.. 한번 정도는..(그러며 주섬 주섬 서랍을 한참 뒤지더니 무슨 조그만 배지 같은걸 내게 건네줬다)
- 오, 감솨! (토론토 시청 청사 모양의 배지였다. 언뜻 보면 순금 같다. ㅋ)
뱃지는 토론토 Blue Jays 모자에 달았다.
좌간 그래서 정말 별 볼 건 없지만 토론토에 살면서 한 번도 안 들여다본 시청 청사 내부를 둘러봤다. 세금 허투루 안 쓰고 시청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나, 안 하나.. ㅋ
정말이얌?? 정말 쓰레기를 그렇게 많이 줄였쓰? 수고했네..
토론토의 유서 깊은 세인트 로렌스 재래시장(?)을 그린 대형 수채화. 초딩이 그린 것 같아서 더 정이 감.
내가 지난주 그 초음속 전투기들 찾느라 눈이 뚫어져라 푸른 하늘을 바라봤던 토론토 에어쇼가 1980년 에도 개최된 모양인데, 지난주의 나처럼 목을 고장 날 정도로 꺾어가주구서는 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하늘을 바라봐 대는 관중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그걸 또 유화로 그려냈다.
1850년대의 토론토. 아시아 출신인 내가 저 당시에 있었다면 난 뭘 하고 있었을까.. 유명한 Distillery District에서 어마 어마하게 무거운 술통들을 마차에 싣고 있었거나, 유니온 역 주변의 철로 교환 작업을 하고 있었거나, 벽돌공장에서 라임 스톤을 뽀개고 다듬어 벽돌을 만들어내고 있었거나.. 좌간 노예성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을 듯.. 그 옛날 중국에서 건너온 수많은 노동자들은 캐나다의 대륙 횡단 철도 건설의 말단 노동자로써 막대한 역할을 해냈고, 캐나다 사회에서의 정치적 지분을 확실히 확보했다. 지금은 토론토 인구의 12%를 넘게 차지하며 막강한 시민 그룹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중국계 후손들은 사회 곳곳에서 중추적 역할을 다하고 있다. 토론토 시장 올리비아 차우 역시 중국계다. 대학교나 박물관, 공원 같은 공공시설엔 중국식 이름의 기부자들을 수없이 본다. 하지만 토론토 인구의 거의 5% 나 차지하는 한국계 이름의 기부자는 내가 거의 20년 다되게 캐나다에서 살아오면서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중국계들이 크거나 작거나 기부등을 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길거리에서 시끄럽고 무례하게 지나치는 중국계 젊은이들은 민족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 사실 그럴수가 있다. 공산당 중국과 홍콩은 너무나 다른 체제였기에. 이곳의 많은 중국계 시민들은 대륙보다는 홍콩 출신인 경우가 많고 영국적 문화나 사고 방식을 가진 이들로 대영제국의 일환으로서의 홍콩과 캐나다는 여러 면으로 가까웠다. 어쨌든 이들 중국계들은 유사 업종의 사업을 하면서 서로 금전적으로 신용을 주고 받으며 단단히 뭉친다. 한국은 그런 경우 서로 경쟁하며 싸운다. 다들 혼자서 자영업이나 사업을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계들은 규모면에서 중국계를 따라 갈래야 따라갈 재간이 없다.
엘베를 타고 시청 꼭대기 25층까지 올라갔으나 전망 라운지는 폐쇄되어 있었고, 사무실 정도밖에 없었다. End of 시청사 tour.
사실 내가 토론토에서 가장 좋아 하는 건물은 구시청사, 현 법원(Court House) 건물이다. 다음 편에서 소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