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phis Design
Oh, mama, can this really be the end
to be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1980년 이태리 밀란의 겨울, 밥 딜런의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이 울려 퍼지는 방 안에서 작당 모의가 진행 중이다. 열명 남짓한 모임으로, 모인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밀란에서 활동 중인 가구 디자이너들이다. 대개 젊은 디자이너들이었는데, 유독 눈에 띄는 노년의 남성이 열을 내며 모의를 주도하고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은 Ettore Sottsass. 그는 기존 70년대의 디자인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자며 후배 디자이너들을 부추긴다. 그의 선동(?)이 먹혀들었는지,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듣고 있던 밥 딜런 노래의 제목을 따서 스스로를 '멤피스 (memphis) 그룹'이라 부르고 혁명을 감행한다.
멤피스 디자인. 생소하다. 멤피스라면 미국 남부 어딘가에 있는 도시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멤피스 그룹이 시도한 디자인 혁명이란게 대체 무엇일까. 혁신적인 디자인이라 하면 소위 북유럽 스타일의 말쑥하고 쓰기 편한 디자인 아니었던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A사의 컴퓨터와 핸드폰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고 하는 디터 람스의 미니멀한 디자인을 본 적이 있는 듯도 하다. 밀란의 반동분자(?)들은 정확히 이 지점을 거스르고자 했다. 멤피스 그룹은 70년대 당시 주류를 이루던 갈색, 베이지, 회색 톤을 띄는, 완벽하게 정제된 형태의 모던 디자인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들은 주류 디자인에서 쓰기를 꺼리던 밝은 파스텔 톤의 색을 과감히 사용하고 이를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에 담아냈다. 미니멀리즘의 상자 속에 갇혀 있던 사고의 유연함이 마침내 퐁퐁퐁 상자 밖으로 흘러나왔다.
갑자기 웬 디자인 얘기인가.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디자인 수업을 듣고 있다. 일하고 있는 연구소 건너편에 미대가 있는데 지난 몇 년간 이따금 기웃기웃 망설인 끝에 기어코 야간 수업을 하나 듣고 있다. 수업이라는 것이 사실, 매력적인 그래픽 디자인의 비밀을 조금 알려줄 듯 하다가 숙제를 던져주고 '각자 알아서 재밌게' 해오라는 게 대부분이다. 그 다음 수업에서는 어김없이 각자의 작업에 대해 이게 좋네 저게 이상하네 평하면서 시간을 때운다(?). 처음에는 이거 너무 날로 먹는 수업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수 년간 연구실에서 과학을 배운 방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디자인 수업이 낫다. 연구실에서는 누군가가 딱히 과학의 비밀을 알려주지도 않고 (실은 모두가 모른다) 각자 알아서 해보라고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 알아서' '재밌게' 해볼라치면, '누군가가 알아서' '재미없게' 만드는 일이 꼭 생긴다. (오해하지 않기를. 그저 애정 섞인 투정이다.)
지난 수업은 포스터 디자인이 숙제였다. 현대미술관에서 20세기 산업 디자인에 대한 전시가 열린다 생각하고 그에 맞는 포스터를 만들어 오라는 거였다. 우선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20세기의 디자인을 찾아야 했다. 때마침 내 방 책꽂이에 꽂혀있는 20세기 디자인이라는 마치 카탈로그 같은 책이 떠올라 훑어 보았다. 워낙 두껍기도 하거니와 주로 제품 사진 위주라 빠르게 넘기고 있었는데, 유독 한 페이지가 시선을 사로잡아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Michele De Lucchi 라는 듣도 보도 못한 디자이너의 듣도 보도 못한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멤피스 그룹의 일원이었던 그의 낭만적인 작품은 고만고만(?)한 디자인으로 가득찬 책 속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설렜다. 그래 이거다. 멤피스 디자인. 이 정도 두근거림이면 내 선에서 알아서 재밌게 포스터로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서 멤피스 그룹을 반동분자로 소개했지만, 사실 반동분자들의 업적이라 하기에는 그들의 작품이 지나치게 유쾌하고 상큼했다. 이들 작품 중에 포스터의 주인공이 될 만한 사물을 찾아 보았다. 어렵지 않게 한 마리의 새를 닮은 램프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섬 이름을 딴 '타히티 램프'. 멤피스 그룹을 이끌던 Sottsass 할아버지의 작품이었다. 색색이 물든 단순한 형태의 몸통은 장난기 어린 새의 자태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몸통을 떠받치고 있는 지지대는 벌레가 제 멋대로 꿈틀대는 듯한 패턴을 입어 홀가분한 해방감을 더했다. 멤피스 그룹은 과연 유쾌한 반란가들이 맞는가 보다. 똑같은 모습을 하고 기능에 충실한 사물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던 때에, 이렇게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다니. 기필고 이 순진무구한 녀석을 포스터 주인공으로 캐스팅 하고 말리라.
이 녀석에게 어떤 이야기를 입힐까. 멤피스 디자인의 깜짝 등장과 타히티 램프의 장난스러움, 이 둘을 적당히 버무려 봤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관람객들을 놀래키려 숨어있는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존재를 강요하지 않고 가볍게 장난치듯 툭 선보일 생각에 들떠 있는 녀석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서프라이즈 장난을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투영했던 것 같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후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사실 거의 즐겁기만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쁨이었다. 약간의 심심함이 남아 있어 램프 뒤를 노리고 스믈스믈 창문 밖으로 기어나오는 G사의 로고를 추가했다. 수업에서 이 포스터를 소개하면서도 마냥 즐거웠다. 듣는 이들도 즐거워 보였다. 이것 역시 오랜만이었다. 나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반짝이는 눈들을 본 것이.
어차피 모르고 가는 길, 순수한 두근거림으로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사실 멤피스 그룹의 활동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87년까지 불과 7년 정도의 활동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디자인계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다수의 평론가들에게 사랑 받지 못했고, '바우하우스와 피셔 프라이스(미국 장난감 회사)의 샷건 웨딩 (속도 위반으로 인한 성급한 결혼)' 이라는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 멤피스 디자인의 자취를 패션 업계(American Apparel, Urban Outfitters)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어 반가우면서도, 왠지 상술을 위해 자극적으로 왜곡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음유시인의 음악을 함께 듣던 이들은 사물을 통해 시를 썼다. 대량 생산의 틈바구니에서. 약간의 쓸모만을 간직한 이 넉넉한 아름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수 십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무모해 보이는 길을 걷는 이들에게 넉넉한 힘이 되어 준다. 어차피 모르고 가는 길, 순수한 두근거림으로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