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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Sep 01. 2015

0. 외로워서 가는 곳.

프롤로그

그녀가 말하길

그게 다 외로워서 그래
그가 굳이 옷을 챙겨 입고 라면을 사러 가는 것도
티비를 켜놓고 잠드는 것도
그게 다 외로워서래

그게 다 외로워서래
그가 집에 간다 하고 또 다른 데 간 것도
이 시간까지 남아 귀를 기울이는 것도
그게 다 외로워서라네
모두가 끄덕끄덕

김목인 '그게 다 외로워서래' 중


7년이 다 되었다. 어느 때면 꼭 갈 것만 같았던, 그래서 담담하게 인사하며 미국 땅으로 떠나온지가 벌써 그렇게 되었다. 혼자 사는 것이 두렵지 않았었다. 외동이로 자라서인지 혼자인게 익숙하고 편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족을 떠나 혼자 살아왔기에, 이 곳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생활도 그 연장선이겠거니 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시작이 낯설기는 했지만, 얼마 간의 기다림은 익숙함을 가져다 주었다. 원하면 얘기 나눌 사람들이 있었고, 조금 더 원하면 솔직한 마음 나눌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길어진 탓일까. 그렇게 20대를 담담히 흘려보낸 후의 나는 외로움을 바짝 짊어지고 서 있었다.


목표가 목전에 있다. 졸업 말이다. 한 과정을 끝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나를 둘러 싼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간절했을까. 스스로에게도 자신 있게 추억할 만한 성실한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한 여정을 끝내려할 때 마주하는 이 쓸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무어 대단한 것이 있을거라 기대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실망하는 것일까. 주어진 곡간을 알뜰히 채우지 못한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것에서 오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외로워서 가는 곳들이 늘고 있다. 감사하게도 벗 삼을 수 있는 자연이 주위에 있어 그곳들로 향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혼자 차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있다. 우두커니 라디오를 켜놓고 듣곤 한다. 혼자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좋다. 책을 잘게잘게 조각내어 먹여주는 이야기가 맛있다. 혼자 식사를 한다. 가끔은 차 안에서. 익숙한 메뉴를 시켜 먹는다. 익숙한 버거 향이 좋다. 친절하게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도록 음식 받침도 준다.



밀크쉐이크에 꽂힌 빨대를 흡입한다. 잘 나오지가 않는다. 몇번 더 강하게 흡입한다. 이상하리만치 담백한 감자 튀김을 먹는다. 케첩 두 봉지를 짜내 찍어 먹는다. 좀처럼 질리지 않는 맛이다. 버거를 우걱우걱 씹는다. 입 안에 쌉싸름하고 비린 맛이 감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낯선 맛 말이다. 내 피 맛이다. 너무 열심히 버거를 씹었나보다 생각하며 거울에 혀를 비춰본다. 중간 쯤에 스윽 갈라진 자국이 보인다. 붉은 혀 위에 더 붉은 피가 경계 없이 고여 있다. 다시 입을 다물고 빨대를 흡입한다. 빨대 끝이 상처에 딱 맞게 와닿는다. 비로소 깨닫는다. 격하게 밀크쉐이크를 빨아대다가 난 상처라는 것을. 허무한 웃음이 감돈다. 무언가에 이렇게 격하게 힘을 다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달콤한 밀크쉐이크가 상처를 감싸며 흐른다. 차 안에서의 식사가 곧 끝이 난다. 얼마지나니 목마름이 찾아온다.




외로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건 무언가를 아직 기다리고 있단 것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주하기 위해서 찾아간 곳들.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진첩: instagram @ peter.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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