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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Jan 25. 2021

모빌리티

당신은 가끔 미국이 몹시 미워진다. 트럼프 때문은 아니다. 바이든 때문도 아니고 카니예 웨스트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참고로 여기서 미국이란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 샌프란시스코라는 중소도시 주위를 둘러싼 일부 지역 혹은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작은 지역을 말한다.)


굳이 말하자면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일론 머스크 씨에게 악감정은 전혀 없다. 그가 하는 일은 그것대로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당신은 그가 앞으로도 좋은 전기차를 만들어 주고 사람들을 우주에도 보내 주길 바란다. 아, 그전에 엘에이까지 뚫는다던 지하 터널부터 어떻게 좀 해주었으면 한다.)


얼마 있지 않으면 당신은 무인 자동차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101 고속도로에는 가스 페달에 발을 올리지 않고 핸들에 손을 대지 않고 출퇴근하는 테슬라 운전자들이 있다. 그들이 자유로워진 손발로 그 시간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데 사용할 것 같진 않다. 차창이 내려가고 운전자의 손가락이 차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수신호가 대체로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 당신은 잘 알고 있다.


어쨌든 다들 새로운 가능성에 들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그 가능성이 무엇일지 짐작해 본다. 어젯밤에 보다가 만 넷플릭스를 마저 볼 수 있는 가능성. 30분 후에 회사에 도착해서 체크하려고 했던 이메일을 조금 더 일찍 열어볼 수 있는 가능성. 그러면서도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전통적인 운전 모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훈련된 민첩한 손발을 갖게 될 가능성. 가능성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당신은 운전 중에 자유롭게 쓰고 싶은 신체 기관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귀 정도면 충분합니다 라고 대답할 테지만, 101 고속도로 위의 다른 운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이 당신에게 '당신은 그렇게 소박한 자유를 꿈꿀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손과 발을 비롯한 모든 신체 기관이 운전이라는 단순 노동에서 해방을 원합니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개인의 자유. 캘리포니아에서 그것보다 위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택시 기사가 없는 택시와 배달원이 없는 오토바이가 도시 곳곳을 뒤덮는 것을 보기 전에 당신은 어떻게든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이다. 생계형 운송수단에서 내린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밖으로 내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은 좀 걷고 싶다. 차에서 내리고 싶다. 생각이 막히면 걷고 싶고, 사람이 보고 싶을 때도 걷고 싶고, 버섯을 사러 갈 때도 걷고 싶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당신이 사는 동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시시한 일 따위를 하기엔 당신이 사는 동네는 너무 발전했다. 자동차들이 스스로 운전을 하는 시대에 차에서 내린 당신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이곳엔 애초에 동네랄 것이 없다. 집 앞에는 차가 있고 차 옆에는 도로가 있다. 인도는 없다. 인도가 있더라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걸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밤에 우유라도 하나 사러 나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걷기 좋은 지역을 검색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물론 그 지역에는 걷는 데 필요한 보행로나 가게와 같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다만 당신은 수많은 홈리스들과 함께 걷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내가 사는 집 바로 옆에는 깔끔한 슈퍼가 있는걸요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지갑에서는 분명 매달 삼백만 원이 훌쩍 넘는 월세가 빠져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은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도심 밖으로 거처를 옮긴다. 운이 좋으면 집 주변을 걸어서 산책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당신이 집 현관을 나와 걸어서 커피를 마시러 간다거나 식물을 사러 갈 수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모든 것이 최적화된 엔지니어들의 도시에서 가게가 주거지에 끼여 있는 건 용납될 수 없다. 가게들은 모두 몰이나 플라자라고 불리는 끔찍한 곳에 수용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게란 누군가가 자기만의 비전을 가지고 오픈한 스몰 비즈니스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다. 매장 면적보다 주차장 면적이 넓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곳에 걸어서 오는 얼간이는 없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출퇴근 시간 고속도로 위에서 녹초가 되었던 당신은 또 한 번 가스 페달을 밟아 한참을 달려야 한다. 코스트코니 타겟이니 하는 대규모 물건 수용소에서 당신의 물건들을 구출하기 위해. 그리고 당신은 남들과 똑같은 옷을 사고 남들과 똑같은 의자를 산다.


무서운 사실은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미국에서 두 번째로 걷기 좋은 곳이라는 거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당신은 이상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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