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다방에서 만난 어린이

by 한여름

빨래방에서, 쓰던 수건이 대부분인 빨래가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걸 바라보면서, 마음이 심난한데 간단한 얘기나 써보며 이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한다.


지난 5월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그로부터 3주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놀란 마음도 잠시, 뇌나 장기를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크게 다친 어깨와 다리를 잘 수술한다는 병원을 빠르게 알아보고 입원시키고 수술하고…아무 준비없이 닥치는 일들을 처리하며 정말이지 단 5분도 내 시간이란걸 가질 수 없을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2주가 흘렀다. 엄마의 간병만으로도 벅차다,고 말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다른 처리할 일들이 얼마나 많던지, 그리고 1-2인실 자리도 나지 않고 휴게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4인실을 썼는데 다른 환자분들께 피해가 갈까봐 엄마 사고에 따른 온갖 행정처리와 내 업무를 건물 계단 사이에 서서 통화하고 처리하고, 혼자서 거동을 할 수 없는 엄마를 20분 이상 혼자 두면 안되기에 중간중간 와서 확인하고 케어하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매일 코를 골고 바로 옆 간호사실도 시끄럽고 보조침대도 불편하고 수면 중 1-2번 정도는 엄마를 화장실에 모시고 다녀와야 했기에 계속 신경도 쓰고 있어야 해서, 그 수술병원에 있던 10일간 단 1시간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이 모든게 나도 40도가 넘는 고열로 앓아서 1주일간 입원하고 퇴원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내 몸상태도 평소같지 않은데, 예고없이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엄마의 이번 교통사고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우선, 대학병원은 교통사고 환자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 (이건 예전부터 그랬는지 의료파업이후로 바뀐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2차병원은..자신들의 병원에서 수술받지 않을 것이라면 응급처치가 필요한 하룻밤 입원조차 시켜주지 않는다는 것.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도 입원부터 퇴원까지 최대 2주밖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이후 회복은 한방병원 등에서 지낼 수 밖에 없다는 것 (요즘 한방병원이 왜이리 많고 잘되나 했더니 다 이런 이유였다.) 등등. 사실 평생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면 더 좋을 얘기. 하지만 나와 내 가족, 내 친구 등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교통사고는. 그런걸 생각하면 일반 상식으로 알아둬도 좋을 정보들.


암튼, 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사는 동네의 꽤 괜찮다는 한방병원으로 옮겨 수술 후 회복에 필요한 치료들을 받으며 지내는 중이다. 여전히 혼자 거동을 하실 수도, 팔도 왼팔만 쓸 수 있기에 모든 생활 전반을 내가 해드려야 해서..빠질 수 없는 회의가 있는 날만 서울에 다녀오고 있다. 그렇게 몇 번 빠져야 하는 날, 간병인을 써봤는데 한 번도 괜찮은 분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적어도 한달은 더 지속될 이 만만치 않은 간병생활을 내가 떠맡기로 했다.


이런 생활 중 나의 유일한 기쁨은 커피사러 다녀오는 시간. 나의 선호도와는 관계없이, 병원 바로 앞에 빽다방이 있어서 가장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곳이라 그 곳으로 다녀온다. 요 며칠은 빽다방에서 카페라떼를 천원에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어 어느 시간대에 가도 사람이 넘쳐났다.


오늘은 가게에 들어서니 다들 주문하고 기다리시는지 키오스크 앞에 한 남자아이만 주문을 하고 있었다.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머뭇머뭇하더니 갑자기 “저..먼저 하세요” 한다. 그래! 하고 먼저 하고 가버리면 땡이지만, 그거 도와주는데 뭐 10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싶어서 “왜요? 뭐가 잘 안돼요? 도와줄까요?” 했더니 반가운 얼굴로 끄덕끄덕한다. 뭐 주문할거냐고 했더니 딸기라떼라는데, 내가 여러 카테고리를 봐도 딸기라떼가 안보인다. 여러 버튼을 눌러보다가 결국 카운터 매니저님에게 가서 “딸기라떼는 어느 카테고리에 있어요?”하고 묻자 “아! 음료요!”한다. 음료에 있는 딸기라떼를 찾아서 눌러줬더니 아이는 그 다음은 자기가 할 수 있다는 자신있는 눈빛을 보여서, 나는 이만 뒤로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었다. 근데 추가로 주문한 음료가 카페라떼인데, 정상가로 찍혀 있는 거다…? 프로모션에서 카페라떼를 찾아서 눌러야 1천원이 결제되는데, 평소처럼 커피에서 카페라떼를 주문하면 기존 가격인 3200원? 3500원?(정확히 모름..)이 되는 것이다. 뒤에서 “잠깐!! 엄마가 아이스 까페라떼 주문해달라고 한거죠? 그럼 이거 취소하고 프로모션에서 카페라떼 주문해야 천원으로 결제돼요” 라고 알려주면서 키오스크 주문을 마쳐주고 그 다음 내 주문도 했다. 아이는 잠시 어리둥절 하더니 내가 준 번호표를 받아들고 옆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나는 서있을 기력도 별로 없는 상태라 ㅋㅋ 테이블에 와서 앉아서 기다렸다. 내 앞번호인 아이가 딸기라떼와 까페라떼를 잘 가져가려나 지켜보면서. 아이는 힐끔힐끔 내가 앉은 자리를 봤다. 아마도 아까 미처 얘기하지 못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텐데, 꽤나 내성적이어서 아무 얘기도 못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없는 나는, 데뷔 후 애교가 많이 늘었지만 태생부터 내성적이었다는 내 최애(최근에 생긴 두번째 최애)를 떠올렸다. 미용실에서 맘에 안들게 커트가 되어도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는, 내 최애의 어린시절도 저런 모습이었겠지 싶어서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쓰는 글, 쉽지 않은 시간 속에 놓여진 근황이라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별 거 아닌 행복을 찾아가며 웃고, 버티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도 아니고,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버텨가며 지낸다. 그래도 매일매일 행복한 순간들을 찾아 누리는 등,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지는 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게 인간이라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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