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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08. 2024

택배가 알려준 나는?

나 알아가는 중




나는 여실한 사회적 동물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홀로 살 수 없는 존재다.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다.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추구할 수도 있다.




아침 일찍 문자가 오고 아이스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절친이 가락 없이 보낸 떡상자였다. 다리부상으로 걷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애써 좋아하는 떡을 보내왔다. 저탄고지 다이어트는 당분간 저 멀리 밀어 두어야 할 판이다. 쫄깃한 흑미 구름떡 2~3개를 꺼내 실온에 두었다 먹어 보았다. 차분한 온도에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에 오래 머물렀다. 끈적함과 포근함이 공존한다. 아침나절 '이것이 사람 사는 맛이구나!'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주말에 4명의 아담한 대학동기 모임이 있다. 떡봉지를 보며 4개는 포장해서 싸갈 생각부터 한다. 나머지 4봉은 옆지기 아침식사용으로 하나씩 꺼내줄 생각이다. 퍼줄생각만 하는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것이 나의 실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받는 것보다 베풀며 살아가는 내가 좋아져 버렸다. 이런 지금의 모습이 만족스럽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부대끼며 살다 보니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람향이 좋았다. 내  소명 다하는 날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것이고, 살아가는 날들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픈 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나였다.







일주일째 무기력한 나를 택배상자가 일으켜 주었다. 다음 주까지 물미역 신세를 즐길 예정이었으나 너무 길게 늘어지지 말라고 정신 차리게 해 준  친구의 고맙고도 강력한 경고였다. 내 안에 사뭇 다그쳐도 안 될 무력감을 친구의 마음씀 하나로 일순간에 잠재워 버렸다. 역시 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느끼는 존재였구나!




중년의 문턱을 지나며 조심스레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조금씩 알아간다. 중년의 시간이 주는 혜택이다.

참 많이도 아파했던 인간관계가 참 많이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고유한 향에 매료된다. 그럴 수도 있을 모든 사람에게서 그럴만한 고유의 향이 우러나와 오늘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킁킁거려 본다. 널려있는 행복을 마구마구 주워 담는 중이다.







역시 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관계 속에서 아파하고 관계 속에서 행복했던 전형적인 사회적 동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먼저 내어줌"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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