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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04. 2024

내 의지대로 산날이 얼마인가?

넋 놓고 산 시간들




“꼭 이렇게 해야 한다, 꼭 이래야만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틀에 얽매여 살다 내 삶의 자율성과 재미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적당한 나이에 취업을 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적당한 나이에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것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이혼을 하거나 궤도를 조금 벗어나 삐딱선을 타면 불행한 삶이라 치부한다. 직선에 들어맞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이 그어 놓은 직선을 따라가느라 정작 누려야 할 자신만의 진정한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








여자신분으로 결혼 적령기는 25살 전후가 절정이라 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날름 해버렸다.

결혼식에 노랑저고리에 빨강치마를 입고 예를 치러야 한단다. 평생 한번 입을 한복을 1996년 당시 20만 원을 주고 맞추었다. 옆지기랑 커플링 하나만 간소하게 하고 싶었지만 어른들 성화에 금붙이를 사들였다. 양가 부모님은 서로 예물 액수를 맞추며 재력을 저울질하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불필요한 예물은 팔고 추억으로 한두 가지만 남겨두었다.




아이는 둘이 기본이고 가급적 딸, 아들순이면 120점짜리 부모라 했다. 엉겁결에 120점짜리 부모가 되었다. 집은 좁은데 피아노는 기본으로 있어야 한단다. 큰 앤틱풍의 피아노를 들였다. 체르니 100번까지 기본으로 마스터해야 한다니 관심도 없는 아이들을 2~3년간 힘들게 했다. 진도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뒤처졌다. 관심이 없으니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을 두드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마나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을까? 이제야 뒤늦게 엄마의 무모한 욕심을 절여 놓는다.




이혼은 언감생심,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단다. 무조건 참고 살다 가슴에 큰 동굴 하나 만들었다.

나의 자아실현보다 자녀 잘 키우는 것이 노후대책이라 했다. 그리 따라만 하다 처절히 버림받게 생겼다. 이리 살아야만  되는 줄 알았다. 한눈 한번 안 팔고 오직 정면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직진했다. 따라쟁이로 살다 보니 나에게 남은 건 자그마한 기쁨과 커다란 상실뿐이다.



            

사람들은 이래라저래라 말한다. 나는 아무 의지도 없이 따라쟁이가 된다. 그리고 무수한 시간이 흘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다녔던 많은 상황들이 후회로 남는다. 더러는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큼지막한 것들은 후회로 남는다. 의지의 부재가 후회로 반격을 가해온다.








얼마 전 "올블랙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하는 日 MZ 신부들..."이란 기사가 올라왔다.

블랙은 금기라는 과거와 달리 ‘남편 외에는 물들지 않겠다’는 뜻의 블랙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일본 신부들이 늘고 있다. '개성을 살린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놀랍지만, 너희들 답다’며 좋게 보아준다고 한다. 오직 화이트 드레스만이 전부였던 나는 블랙 드레스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날이 한 번은 올 것이다.




고정관념(固定觀念)은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단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잘 변하지 않는 생각들'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새로운 길을 내는 만큼 어려운 일이다. 단단한 기존의 틀을 깨고 나만의 생각으로 실행하기엔 적당한 불편함과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 고정관념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극복해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고정관념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그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리고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며 50년을 살아보니 정답이 없는 인생길. 정답만 찾으려, 편한 길만 가려는 내가 우몽해 보였다. 무엇보다 사는 재미가 없다. 틀속에서만 허우적거리다 보니 도덕성은 강조되고 재미는 반감한다. 이제는 재미스러운 삶에 조금의 무게를 더하고 싶다.




앞으로 이어질 끊임없는 선택의 연장 속에 고정관념의 무거운 갑옷은 벗어던지고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풀어헤치고 싶다.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모두 내가 짊어지면 될 일이다. 강요받는 게 싫음에도 강요받았던 삶.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같은 삶에서 자유를 향해 소심한 탈출을 시도해 본다. 이제는 세상이 요구하는 복종을 거부하고 나의 정체를 찾아 먼 길을 떠나본다.








정신적 웰빙의 가장 큰 부분은 자기 삶의 자율성과 통제성이다. 이제는 어떠한 것을 선택할 때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의지에 집중하고 싶다. 퍼뜩 정신을 차라고 나서 뒤늦게 소소한 내 마음대로 삶의 진가를 알아버렸다.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현재와 미래의 길 위에서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그 인생을 즐겨야 할 목표가 생겼다. 삶은 유동적이고 아무리 힘든 인생이라도 견딜 수 있다. 많은 것을 고정된 강요 속에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는 나였다”로 살고 싶다.




내 의지로 산날이 얼마였던가?

내 의지대로 산날이 있긴 있었던가?

앞으로 내 의지대로 살 수 있을까?

의지와 상관없이 넋 놓고 산 시간들이 더 많았다.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 치고 장구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유튜버 박말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자기 호흡과 리듬으로 신나게 엉덩이 한번 흔들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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