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시 Jan 15. 2024

오후 3시에 여인은 어디로 갔나?

로망에 좌절한 여인





"안 되는 건 없어."



책상에 앉아 오전 일을 처리한다. 늘 그러하듯 책상 오른쪽에 위치한 창문을 빼꼼히 열어 환기를 시킨다. 오늘은 유난스럽게 답답함을 느낀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오전 내내 기분이 푸석한 진흙 밭을 밟는 느낌이다.




오래도록 열지 않은 왼쪽 창문을 슬며시 열어본다. 손잡이며 창틀에  먼지가 이불이 되어주어 수북이 쌓여 있다. 일회용 휴지 두장을 꺼내어 '쓱쓱' 시원하게 밀어주고 햇빛을 집안으로 유혹했다. 솔솔 알싸한 바람이 내 몸을 슬슬 청량하게 얼려 준다. 답답했던 아침 기운이 시원한 사이다 맛에 줄행랑을 쳤다. 오늘 업무효율은 70%가 넘을 듯하다. 기분 좋은 아침 출발이다.




아들은 내가 힘들다고 투정하고, 부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 안 되는 건 없어, 해봐”라고 미리 엄포를 놓는다. 그 말은 26세 아들의 삶의 신조이며, 엄마 부탁이 귀찮아서 미리 방어막을 치는 그분만의 묘한 전술이다.




어쨌거나 힘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들어서 그런가 귀에 박힌 “안 되는 건 없어, 해봐”를 떠올린다.








왼쪽 창문을 열며 느끼는 세상은 예전엔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냥 지하 주차장서 헤맬 것 같은, 물미역 같은 나를 한순간에 일깨워 주는 강한 바람. 타성에 젖어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왼쪽 창문 열기는 신세계를 선사해 주며 점점 더 쪼그라드는 나를 고쳐 세워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다.




사십 대까지 안 되는 건 거의 없고 되는 일이 더 많았던 시절이다. 오십 대부터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노력도 안 하고, 의기소침해서 주저앉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인생님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미리 선착하는 걸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나를 위로하는 차원일까? 그럴까?




그동안 너무 처져 있었다. ‘인정해라. 너 자신을..'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50 중반의 여인네는 너무 막막하고 두렵기만 하다.








“오후 3시에 퇴근하는 여자”가 평생 나의 로망이다. 가볍게 아르바이트하고, 바게트빵 하나 목에 걸고 자전거 타고 콧노래 부르며 퇴근하는 삶. 탄천에서 나는 풀내음도 맡고, 새소리, 물소리도 들으며 룰루랄라 페달 밟고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삶. 하늘도 한 번 쳐다보고 구름도 한 번 쳐다보며 지나가는 강아지랑 견주도 가벼운 눈웃음으로 안녕을 기원하며 즐겁게 오후 3시를 마무리하는 삶.




이런 삶을 꿈꾼 지 어언 사오 년째. 조금 어설프게 시도해 본건 고작 6개월쯤. 이마저도 나의 로망을 실현하고 돌아오는 길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일로 긴장한 탓에 정신은 혼미했고 몸은 땀에 범벅이었다. 자동차 유리로 펼쳐진 차창 밖 풍경은 내 로망과는 거리가 먼 자연의 소리보다 각박한 세상이 내는 수분기 없는 메마른 소음에 불과했다.




다시 좌절모드로 꿈을 접은 지 이삼 년이 흘러간다. 글쓰기를 하며 마음속에 꼭꼭 짓눌러 놓았던 나의 소녀스러운 감성과 로망을 슬며시 꺼내 본다. 알아주고 받아주어고 다독여 주어야 할 때다. 그래야만 내가 이 날들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나의 로망은 자유를 옥죄지 않는 범위에서 자아를 조금만 꺼내어 사용하고 싶다는 작은 몸부림이었다. 급여를 받는 행위다 보니 갑에게 나의 자유와 의지를 담보해야 했다. 보수를 받고 일하니 아쉬울 건 없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자전거 타고 퇴근하는 오후 3시의 여인'은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아직도 내 안에 순수한 어린아이가 사는 게 분명해!'




아들아! '안 되는 건 분명 있다.'








운칠기삼[ 運七技三 ] 운이 7할이고, 노력이 3할이라는 뜻이다. 결국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중국 설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안되고 불가능한 일들이 더 많았다. 인생 선배님들의 소중한 고견이니 인정하고 수긍하고 위안도 받는다. 안 되는 게 점점 많아지는 시절에 나를 일으켜 세워준 명약 같은 말씀이다. 나에겐..




이리저리 나를 찬찬히 돌아보며 최근 이삼 년간 너무 지쳐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내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어수룩한 뒷골목에 초라하게 어슬렁 거리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을까? 나의 중년은, 노년은 현명하고 똑 부러지게 삶을 요리하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인데 이대로 가다간 귀여운 할머니는커녕 할아버지도 되기 힘들다.








왼쪽 커튼을 열면 눈부신 햇살이 나를 노려본다. 나를 질타라도 하 듯 "다시 일어나라고, 힘을 내라고, 다시 할 수 있다고, 예전의 너로 돌아가 보라고..." 본인의 강력한 파워로 나를 제압한다. 이럴 땐 주부 7단의 어수룩한 노련미로 눈치껏 수긍해 주어야 한다. '알겠다고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넋 놓고 있던 내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해님을 만나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 해님이 나를 비쳐주는 온도는 섭씨 1000℃ 이상이다. 99℃에서 마지막 1℃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끓어 주어야 하지만 내겐 그런 용기와 열정이 남아 있지 않다. 식은 지 이미 오래지만 내 여건에 가장 부합한 상태로 적절히 끓어 주리라 다짐해 본다.








알싸한 기온이 가득하니 정신을 차려본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시도도 않고 주저앉기엔 너무 젊다. 좌절하고 주저앉고, 좌절하고 일어서고를 반복하며 차디찬 동해안의 북어가 되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보물 가득한 인생 창고'가 만들어져 있겠지.




'아무렴 어때. 이 세상은 내 세상. 이젠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야.' '날 건드리면 혼난다...'



단 사회의 정의에는 당당하게 맞장구쳐 주는 걸로.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니 중년이고 흔들리니 중년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