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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an 12. 2024

아프니 중년이고 흔들리니 중년이지

갱년기와 맞짱 뜨기





'나이가 들면 많은 것에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소비가 줄고, 옷차림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검소한 삶이 뇌에는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돈을 쓰는 행위 자체가 예산 내 최대 만족을 얻기 위한 고도의 두뇌 활동이기 때문에 생활을 위협하지 않는 ‘적절한 사치’는 오히려 뇌에 도움이 된다. 멋 부림 역시 뇌를 운동시키는 행동 요법이다. 멋을 내면 그에 걸맞은 장소에 가고 싶어지는 만큼 행동 범위를 넓혀 주고 감정을 젊게 해주는 방식으로 뇌를 깨운다.'(조선일보)





아침에 뉴스를 검색하다 꽂힌 기사다. '옳거니~' 내 마음을 동치미처럼 시원하게 풀어 줄 기세다.




 

한 달 전부터 단골 쇼핑몰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브라운색 외투를 봐두었다. 일주일 전부터 49만 원서 28만 원으로 가격이 내려 살까 말까를 반복 중이다.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수준의 옷이다. 이제 집순이가 되어 딱히 외출할 일이 많지 않다. 이삼 년째 맥시멀라이프에서 미니멀라이프로 방향을 틀어 무리 없이 순항 중인데 가끔은 이런 역풍을 만난다.





‘적절한 사치나 멋 부림은 뇌를 깨우고 감정을 젊게 해 준다’에 완전공감이다.

 "암만~~"


급행열차 지나가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드를  '쓱' 긁어 주었다. 오늘도 나에게 가차 없이 이용당한 카드님은 고맙다고 넙쭉 인사를 한다. '카드님에게 사용해도 되냐고 미리 물어보았어야 했나?'





‘전체 가죽 테이핑, 겉감은 살짝 꼬임 있는 텍스쳐의 메리노울 소재, 안감은 부드러운 프라다 소재, 양면 착용 가능, 루즈하고 무난한 스타일의 리버시블 재킷’ 기대반 후회반을 하며 아침부터 한 건한 들뜬 기분이다.





"돈이 뭐가 중한디? 사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적절히 쓰면 행복이지."





동전에 양면 같은 삶. 뭘 해도 후회하지 않으려 중간쯤 발을 살짝 담그고 있는 삶. 늘 이런 식이다. 어중간히 걸치고 사는 거 생각보다 괜찮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어야 하는 진리에 백기를 들어준다.











반백이 지나니 열정도 자신감도 패기도 미모도 사라진 지 오래다. '소까지 때려잡을 기세가 이제는 파리 한 마리도 잡는다' 놀려댄다. 모든 게 잘 흘러갈 줄 알았는데 도처에 난관이 도사리고 돌발상황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보지만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어디 가도 부모님, 각자의 아픈 이야기들뿐이다. 머리카락은 새치가 점령한 지 오래고 눈은 서서히 돋보기를 원한다. 폐경에 모든 기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몸져누워 버린 중년을 다시 일으키기엔 역부족이다.





자주 곡소리 하는 나를 보며 사기결혼 당했다고, 장애인 언니랑 산다고 오늘도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썩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반은 맞는 거 같아 반쯤 수긍을 한다. 다행인 것은 오늘 기분이 수수한 관계로 생트집 잡기는 가슴에 묻어둔다. 기분이 살짝 비껴간 상태면 한방 날렸을 기세다.




 

몸은 나를 아프게 했고 마음은 나를 가차 없이 흔들어 댔다.

아프니 중년이고, 흔들리니 중년이지'









중년의 흔들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청춘들도 흔들리지만 중년들도 흔들리긴 마찬가지다. 흔들리며 사는 게 인생이라 위로하며 나이 듦, 허무함, 상실감마저 끌어 앉고 산다. 너무 빠른 변화에 긴 호흡을 내어보지만 중년의 위기 앞에 맥없이 당하고야 만다. 아파하고 흔들리며 나만의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싶은데 쉽지 않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중년이 태반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인생은 우물쭈물하다간 그냥 훅 간다.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었다. 묘비명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아프다, 흔들렸다, 기대된다"를 외치며 오전에 시원하게 긁은 카드 전표를 응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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