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부모 자식 간에 효도는 없고 사랑만 남아있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세대가 아닌 시대가 바뀌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잘해요, 셀프 부양, 각자도생이 핵심 키워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뒷방 곰방대 할아버지 소리 들을 기세다. 앞으로 도래할 핵개인의 시대에 대처하기란 막막하기만 하다.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안 봐도 비디오처럼 뜨거운 용광로다. 뜨끈 미지근 30%만 예열된 MZ세대의 사랑과 효행을 이해하기엔 서럽고 힘든 과정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기엔 더더욱 힘든 것을.
우리 집에는 MZ세대 연년생 남매가 있다.
1980~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 핵심 특징으로 집단보다는 개인, 여가중시, 자기중심, 디지털, 재미추구다. 부모의 든든한 지원 아래에서 자란 MZ세대는 개인주의와 플렉스문화, 명품 소비가 어느 세대보다 익숙하다.
우리집 아이들. 제법 20대 중반에 접어들어 아저씨, 아줌마의 풍미가 솔솔 풍겨난다. 우유를 많이 먹여서 그런가 조금씩 철분이 흡수되어 무릎 조금 아래에 철듦을 정착하고 있는 상태다. 나보다는 훨씬 양호한 상태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철듦을 확인했으니까...
아이들이 치열한 입시를 끝내고 스무 살이 넘어 어엿한 직장인이 되기까지 몇 해간 심적으로 많이 아팠다. 일반 직장인의 월급으로 연년생 아이 둘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동시에 보냈다. 학비에 용돈에 방세까지. 힘에 부쳤다. 작은 아들이 군에 입대를 하면 경제적 부담이 상당히 덜할 것 같은데 그리하지 않았다. 내심 군입대를 재촉했다. '소귀에 경읽기'였다. 학생 신분으로 군대에 입대하려는 생각은 애저녁에 밥 말아먹은 듯했다. 아이들은 나의 힘듦을 이해하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들에게 부모의 사랑과 희생은 삼시세끼 당연한 밥상이었다. 그 밥상을 차려내며 상실과 고통, 서운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가까스로 큰딸은 피땀과 눈물을 범벅으로 흘린 덕분에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작은 아들은 오직 춤으로 외길을 걸으며 물 만난 고기라도 된 듯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닌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데... 쓸 수가 없는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비상국면이다.
취업만 하면 두 다리 쭉 뻗고 마님 소리 들으며 호강만 할 줄 알았다. 나만의 오만방자한 착각이었다. 이십오 년 이상을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며 뒷바라지했다. 내 인생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보상이라도 받아야 할 듯 그 바람은 더욱 컸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직장에 적응하기도, 자기 생활을 꾸려 가기에도 벅차 보였다. 딸아이는 처음 하는 사회생활, 조직문화에 몸담기가 버거워 보였다. 아들은 어린 나이에 본인이 감당하지도 못할 막중한 업무를 맡았다. 넉넉하지 못한 마음에 과부하가 걸린 듯했다. "왕관을 쓰려거든 그 무게를 견뎌라"라고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처 적응하지도 못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다. 예전엔 첫 월급 타면 부모님 선물을 먼저 챙겼었다.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엄마를 사랑해 준다는, 엄마를 생각하고 있다는 아주 작은 징표만 필요했을 뿐이다. 내가 부모님께 그러했듯 아이들도 그러려니 했다. 아니었다. 내가 엄마로서 가장 섭섭했던 건 엄마는, 부모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첫 월급에 대한 나의 기대가 물거품처럼 무너져 내렸다. 두 번째, 세 번째 월급도 나를 향하지 않았다. 나에게 아이들 월급은 부모에 대한 사랑쯤으로 치부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부모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달라고 아주 불쌍한 척 절절하게 구걸했었다.
"내가 너무 앞서 간 걸까?"
"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몸과 마음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생채기난 상처를 부여안고 있는 나는, 늦가을 포도주라도 된 듯 잘 익어 있었다. 아이들도 이젠 어였한 직장인으로 면모를 과시한다. 마음과 몸이 안정되어 가는 그들은 부모를 살뜰히 챙긴다. 웬 호강인가 싶다. '키울 땐 힘든데 다 키우고 나면 행복시작'을 증명이라도 할 기세다. 이제부터 다시 두 다리 쭉 뻗고 마님소리 들어 볼까?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지 못한 어설프고 못난 엄마였다. 부모 노릇이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를 위로해 본다. 그 덕분에 내 마음 한 자락이 커져 있었다. 신께서는 피 말리는 고난을 던져주시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시나 보다. 하긴 그렇지 않고는 우매한 내가 기다림과 시간이 주는 선물을 어찌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겠는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부모 자식 관계란 과연 어떤 것일까? 서로 자립, 서로 존중, 서로 응원하는 세 박자를 고루 갖추고, 내가 내 삶에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다 보면 아이들과 관계는 자연스럽게 더 큰 사랑과 존중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한 번 더 결심했다. 내가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행할 뿐, 더 이상 내리사랑과 효도에 대한 되갚음을 바라지 말자고... 자식이 손 안 벌리는 것이 효도인 세상. 나도 아이들에게 효도를 바라지 않기!!! 나는 어려운 숙제를 내게 던져둔 셈이다. 과연 이 숙제를 잘 마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