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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Apr 25. 2021

잠수사 8명이 500명으로 둔갑한
'투입'의 진실

왜 자꾸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얼마 전, 유튜브에서 너무 잘 만들어진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세월호 7주년을 맞아 기획된 닷페이스의 영상이었는데, 읽고 있던 <똑똑하게 생존하기>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왜 헛소리들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강력한 이유가 생겼다. 이 영상에서 본 헛소리의 좋은 예가 두 가지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하나는 세월호 사건 당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한 말이다. 


7년 전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금방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어떤 여건에서도 현재 잠수사 오백여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투입"이라는 단어는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달랐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중)

이호중 의원: (그 당시) 엄청난 인력과 엄청난 장비가 동원되고 있는 것처럼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잠수부) 500명이 투입되고 있다' 거짓말이잖아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거기 '투입'이라는 용어에 이제 하나씩 그 말을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가지고) 이게 잠수는 아닙니다. 그 '투입'이라는 게...

이호중 의원: 그렇다면요. 증인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당시 가족들이 가장 관심 있었던 게 뭐예요. 몇 명이 잠수하냐였어요. 그런데 '500명이 투입되고 있다'고 말할 때 내가 '투입'이라고 하는 건 전국에서 불러 모은 인원을 말하는 거다?

김석균: 그중에서...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헛소리 문제를 다룬 철학자인 해리 프랑크푸르트는 헛소리를 "사람들이 자기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옳고 그른지 신경 쓰지 않고 상대방을 감동시키거나 설득하려고 할 때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똑똑하게 생존하기>에서는 이 헛소리의 목적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설득을 위한 것인가, 회피를 위한 것인가. 후자는 화자가 다루고 싶지 않은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것을 피하려는 목적이고 바로 위의 사례가 그렇다. 


헛소리에는 진실이나 논리적 일관성,
실제 전달되는 정보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채
청중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거나 압도하거나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설득하거나 감동을 주기 위한
언어, 통계 수치, 데이터 그래픽, 기타 형태의 설명이 포함된다.

-<똑똑하게 생존하기>, P.81


영상에서 봤던 다른 헛소리는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언론이었다. 사고 당시 언론에서는 이 사고의 책임을 방화범과 지하철 기관사에게 돌렸다. 당시 언론은 모든 책임을 기관사에게 돌렸고 기관사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기관사가 화재로 전기 공급이 끊겼을 경우 문을 열어야 할 마스터 컨트롤 키를 가지고 빠져나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족들이 나중에 왜 사고가 났는지 원인규명을 해보니 당시 마스콘 키를 그냥 놔뒀다고 해도 기관 사이를 연결하는 선과 중간 절연체가 이미 불에 타서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은 사실 관계 규명이 아니라, 이 참사를 책임을 질 사람을 찾고 있던 대중이 좋아할 만한 관심 대상을 찾아 보도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_닷페이스)


그런데 어쩐지 두 사례가 비슷하지 않은가? 두 사건 모두 현장에 있었던 몇 사람 외에 처벌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참사의 원인을 기관사와 선장에게 지목하여 비난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의식적으로 찾고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대응 방법은 변하지 않는다. 삼풍 백화점 붕괴와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 사건은 계속 생기지만 그냥 그때의 관심에 휘둘려 그냥 지나가다 보면 결과는 늘 반복 되게 된다.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반응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나는 그 첫걸음이 남들이 말하는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헛소리를 알아채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똑똑하게 생존하기>에서는 헛소리를 찾아내고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다행인 것은 그 방법이 훈련을 통해 가능하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헛소리는 '블랙박스'(통계적 절차 또는 과학적 알고리즘)에 입력된 데이터의 편향성 때문이거나 거기서 나온 결과에 분명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기술적인 디테일을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출처: <똑똑하게 생각하기>


우리는 투입되는 데이터와 출력되는 결과물만 보면 된다. 그리고 어떤 원인을 너무 빨리 결론을 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된다. <똑똑하게 생존하기>에서는 적절한 마음습관지속적인 연습의 방법 6가지를 소개한다. 헛소리를 찾아내는 일반원칙으로 생각해도 된다.


1. 정보의 출처에 의문을 품어라.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뭔가를 팔려고 한다. 그게 뭔지 알아내는 게 관건이다. 생각해 볼 것은 세 가지다. '누가 내게 이런 말을 하는가?', '이 사람은 어떻게 그걸 아는가?', '이 사람이 내게 팔려는 것은 무엇인가?'


2. 불공평한 비교를 조심하라. 무엇을 정의하는 방식에는 자의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비교 대상이 명확한지 확인해보자.


3. 너무 좋거나 너무 나빠서 도저히 사실일 것 같지 않다면 의심해보자. 진위를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출처를 정보의 원 소스까지 추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정보가 순식간에 공유되는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 환경에서는 널리 퍼지기 위해 충격적이거나 경이롭거나 분노를 발생시키는 주장들을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하자. 


4. 자릿수를 생각하라. 우리는 숫자에 쉽게 속아 넘어가기 쉽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치들은 고의로 혹은 실수로 완전히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계산을 통해 근사치를 찾아내는 과정으로 직관적으로 그 숫자가 헛소리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데, 10의 거듭제곱으로 근사치를 계산하기만 해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을 '페르미 추정'이라고 한다. 


5. 확증 편향을 피하라.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어떤 믿음에 따라 정보의 진위를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한다. 어떤 주장이든지 기존의 내 믿음과 일치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사회학자 닐 포스트먼은 "어느 때건 당신이 맞서 싸워야 하는 헛소리의 주요 원천은 당신 자신이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자.


6. 복수의 가설을 고려하라. 우리는 본능적으로 패턴을 인식을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어떤 현상과 비슷한 시기에 패턴이 보이면 둘을 연관시키고 싶어 진다. 하지만 상관관계인지 인과관계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어쩌면 아예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어렵지만 꼭 우리가 읽어봐야 할 책이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렇게 헛소리를 알아차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불신을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헛소리를 까발려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더 좋았던 것은 헛소리를 까발리기 전 당부하는 전제조건이다. 헛소리를 까발릴 때는 책임감 있고 적절하고 공손한 태도로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정확성이 중요하고, 헛소리를 효과적으로 까발리기 위해서 제대로 논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겸손하고 자비롭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저자들이 강조하는 이 원칙들에서 저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깊이가 느껴져서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겸손하게 접근하면 내가 틀렸을 경우 나를 지켜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반박하는 내용이 이 상대방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정리하면, '예의 바르게' 헛소리를 까발리려면 사람이 아니라 주장을 '정확하게'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을 때 주고받는 모든 대화와 피드백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다우리 모두가 변하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헛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진실과 구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헛소리를 찾아내고 행동해야 한다. 


헛소리를 알아차리는 건 사적 활동이다.
헛소리를 까발리는 건 공적 활동이다.
만약 당신이 헛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헛소리를 까발리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보호할 수 있다.

-<똑똑하게 생존하기>, p.419


참고: 

1. <똑똑하게 생존하기>, 칼 벅스트롬, 제빈 웨스트

2. 유튜브_ 닷페이스 (https://youtu.be/wauHQcAWBV8)

3. 오마이뉴스_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가 밝혀 낸 '사실과 의혹'


#똑똑하게생존하기 #헛소리알아채기 #체인지그라운드 #큐블리케이션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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