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로 역사와 경제 이해하기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부딪히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현상으로 경악과 피해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을 나심탈레브는 '블랙 스완 Black Swan'이라고 부른다.
'블랙 스완'이라는 용어는 나심탈레브가 그의 책, <블랙 스완>에서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단어다.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면서, 모든 백조는 하얀색일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는데,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축적해 왔던 지식과 믿음은 불확실하며,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블랙스완이라고 부른 것이다. '블랙 스완'은 예측이 불가능한 데다 불규칙적으로 일어난다.
블랙 스완이 항상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194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약 100년 동안, 스페인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행운을 경험했다. 잉카와 마야 제국의 지배자들에게서 약탈한 금과 은이 고갈될 무렵, 볼리비아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은광을 발견했고, 이로부터 1년도 안되어 멕시코에서 풍부한 은맥을 발견한다. 1540년 개발된 수은 추출 공법은 스페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자국 내 거대한 광산의 발견과 혁신적인 제련 기법을 통해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좋은 블랙스완도 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저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스페인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통화량이 갑작스럽게 늘고,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식민지를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필수품을 끊임없이 실어 보내야 했는데,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품목들을 사기 위해 금과 은을 적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의 왕들은 대규모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 사태를 악화시켰는데, 결국 1575년 스페인 왕실은 파산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스페인 용병부대에 급료를 지급하지 못하자, 당시 네덜란드에 주둔하고 있던 스페인 용병부대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인 앤트워프를 약탈해 7천 명 이상의 시민을 살해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버렸다...ㅠㅠ (참고: <돈의 역사>, 37~43p.)
이에 경악한 네덜란드 남부 상인들과 지식인들은 스페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네덜란드 북부와 남부가 종교 차이를 불문하고 협력하는 헨트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은 광맥을 찾았을 때 스페인은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나심 탈레브는 대부분의 역사는 결국 블랙스완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역사학이 지닌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역사 시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왜 하필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다른 식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중략)...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 <사피엔스>, 338~340p.
이렇게 '블랙 스완'의 존재를 인정하는 시스템, 예측하기 어렵고 카오스적인 시스템을 '복잡계'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정확한 값으로 로켓을 우주에 보내는 것은 복잡계가 아니지만, 일기예보를 예측하는 기상계는 '복잡계'에 속한다. 수학이나 통계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는 문제는 복잡계가 아니지만, 경제는 복잡계에 속한다. 정책에 따라 기업의 운영이 바뀌고 국가 경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복잡계는 복잡한 시스템을 말한다. 여기서 '복잡한'이란 의미는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러운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정보의 양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성이 올라갔다고 표현하면 그 현상을 설명해야 할 변수들이 많아졌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수많은 변수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데 그 관계가 비선형적임과 동시에 되먹임도 일어난다. - <일취월장>, 73p.
다시 말해 복잡계는 '수많은 변수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고, 운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왜 일어났는지 어떤 순서와 영향을 통해서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는 알고 싶지만 너무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던 나에게 친절하게 내밀어 준 도움의 손길 같았다. 역사와 경제 둘은 서로 떼어놓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 얽혀있는 복잡한 관계가 이야기를 통해 들으니 오히려 쉬워졌다. 읽다가 <사피엔스>의 과학혁명 부분과 겹치는 내용이 있어서 ('자본주의의 교리' 편) 다시 읽었더니 이제는 너무 쉽게 한 번에 읽혔다. 전체 그림을 못 본 채 부분 부분 퍼즐을 맞추다가 전체 그림을 확인한 느낌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1920년대 일어났던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부분이다. 1929년 10월 29일, 모두가 낙관하던 뉴욕증시가 하루아침에 30% 이상 폭락했다. (블랙 스완 발생!!)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계속해서 하락해 1932년 7월 9일에는 1929년 10월 29일 고점 대비 무려 89%나 폭락했고, 1933년 미국 명목 GDP는 1929년 대비 -46.4%, 실업률은 약 25%까지 급등하면서 많은 미국이 깊은 경제 침체에 빠졌다. 문제는 이 미국의 위기가 전 세계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공황은 왜 그렇게 길게 이어졌을까?
무리해서 빚을 내어 투자하던 투자자들에게는 주식이 조금만 폭락해도 원금을 다 날릴 뿐 아니라 추가 빚이 생기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추가적인 담보를 예치하지 않는 한 강제로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매도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한다(*=마진콜). 주가가 급락한 경우 이러한 마진콜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고, 주가는 추가로 하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돈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위기감은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복잡계의 특성인 '되먹임'(*=상호작용이 한쪽 방향으로만 가지 않고 여러 경로를 거쳐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잘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되먹임이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발생했고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경제의 세계가 복잡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회의 모든 현상들은 서로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때문에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 가지 관점, 한 가지 작용만 보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지난주 토요일 대교에서 진행한 홍춘욱 박사의 <돈의 역사> 특강에서 한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아파트를 구매하면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위축이 되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홍춘욱 박사는 아파트를 구입하고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부자가 된 심리 작용으로 돈을 더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무주택자가 1 주택자가 된 경우보다 1 주택자가 다주택자로의 이동이 많았기 때문에 집 값이 상승하면서 오히려 경기 부양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한 가지 현상이나 관점으로는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다. 이 복잡계를 한번에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현상을 조금 더 쉽게, 조금 덜 두렵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는 첫 발을 떼도록 도와 주는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에 참여하면서 작성된 7번째 서평입니다. 완벽한 환경설정을 해주신 대교에게 무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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