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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May 21. 2019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스트레스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영상을 의뢰한 회사 담당자에게 책을 선물했다. 평소 그 과장님은 항상 스트레스에 찌들어 피곤해 보였고 까칠했는데, 그래서 책 <스트레스의 힘>이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최종 산출물을 납품하러 갔다가 이 책을 선물하면서 나도 모르게 말할 뻔했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라고.'


!!!!!!!


나도 모르게 할 뻔한 이 말에 내가 놀란 이유는, 이 책은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말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했어야 하는 말은 이거였다.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보세요."


<스트레스의 힘>에서 스트레스는 '줄이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심지어 이를 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내면의 헐크를 받아들인 브루스 배너처럼 말이다. 


헐크와 하나가 된 브루스 (출처: 어벤저스 엔드게임)


스트레스를 수용하는 삶에 능숙해져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스트레스를 포용하면, -> 자신에 대한 생각과 상황 대처 능력이 달라지고 -> 삶의 도전적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책의 저자인 캘리 맥고니걸은 한 발 더 나아가 인생이 의미 있으려면 반드시 스트레스를 경험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덜 바쁘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밝혀졌다. 사람들은 더 바쁠 때 더 행복하고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할 일보다 더 많은 양의 일을 억지로 떠맡았을 때 더 행복하다. 갑자기 한가해진 생활은 퇴직 이후 우울증 발병 위험이 40퍼센트 증가하는 원인이다.
                                                                                                                      -<스트레스의 힘>, p.110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긴 했지만, 사실 나는 내 삶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활용해오고 있다. 세 아들들을 키우면서 일 중독자처럼 일을 하고, 꾸준히 조깅을 (유지 하려고) 하고, 일주일 1권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고 집안일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바쁜 내 삶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만들어내는 기계 같았다. 임신을 했을 때는 혼자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사업자등록을 했다. 첫아기를 낳고는 젖먹이는 시간이 아까워 한 손으로는 아기 젖을 물리고 한 손으로는 책을 읽었다. (출산 후 2주 사이에 네 권을 읽었다) 아기가 잠에 들면 방 안에 들어가 재봉틀을 돌렸다. 셋째가 태어나 밤에 엄마가 없으면 30분마다 깨서 우는데도 잠이 들면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아무도 시키지 않은) UCC를 신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위의 "사람들은 더 바쁠 때 더 행복하고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할 일보다 더 많은 양의 일을 억지로 떠맡았을 때 더 행복하다"는 책의 문장에서 공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안도감이 들었던 이유는 내가 별나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느끼는 이 성장의 즐거움을 다른 엄마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마음(사명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에게 이렇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과학적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 <스트레스의 힘>은 책 전반에 걸쳐서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 오히려 이롭다"는 명제를 여러 가지 사회 실험을 통해 증명해 내고 있다.  책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하고 있으니, 내가 가졌던 스트레스에 대한 삶의 태도를 바꾸어 내가 변화하게 된 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하나는 내 동생 홍집이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다운증후군인 동생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곤 했다. 설명했을 때 상대방이 미안해하거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기 싫기도 했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느 순간에 생긴 부끄러움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기로 결심했고, 우리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홍집이의 고등학교 졸업을 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막내아들과 내 동생 홍집이, 현충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한 방송국 페스티벌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영화관에서 감독과의 대화를 하거나 TV에서 인터뷰를 하는 등 나는 내 동생과 우리 가족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그 결과 내가 획득한 것은? 넘치는 자신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두 번째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오는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의 변화다. 두 아이의 육아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셋째를 임신했다. 계속 기도했다. 씩씩한 엄마가 되게 해 달라고. 셋째를 출산하고는 거의 독박 육아였기 때문에 매일이 도전이었고 눈물로 하루를 버텼다.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가 야속하게도 내게 했던 말. "니 인생은 네가 살아야지." 그 말은 내가 그 고통을 온전히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내 아이들 육아는 누가 대신해주거나 내가 도망간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세 아이 육아는 나를 도전의식이 넘치게 만들었고 이제 나는 웬만한 사고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이 세 아이들은 나에게 날개가 되어주었고, 내 인생의 의미가 되었다.


장난꾸러기 세 아들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스트레스를 다루는 데 탁월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부끄러워 말 한마디 잘 못했고,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다. 나를 이끈 것은 우연히 맛본 작은 성공들이다. 귀찮고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해 내면 더 값지고 좋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지금의 일 벌리기 좋아하는 나를 만들었다.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환자들을 매일 대면해야 하는 의사들은 환자들을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대상이나 절차로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감정에 동요되지 않아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힘>의 저자 캘리 맥고니걸은 이런 태도가 당장 스트레스를 줄이는 좋은 방법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막기 위한 심리적 방패를 만들어내는 노력은 목적의식과 만족감을 찾아내는 능력과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미국의 한 의과대학에서는 전문 의료진이 느끼는 극도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의 개발과정에 참여한 두 의사는 의사의 회복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다소 급진적인 전략을 생각해 냈는데, 의사들에게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더욱 그 순간에 충실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사들의 정신적 건강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 업무의 특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이들의 심리 상태는 놀라울 만큼 건강해진 것이다. 더불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의사들은 공감능력과 감사하는 마음도 커졌다. 


스트레스가 뭔가를 의미 있게 만드는 원동력의 일부라면, 아무리 배제시킨다고 해도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법이다. 그 대신 시간을 내어 스트레스를 철저히 검토하고 여기서 의미를 만들어낸다면 스트레스는 활기를 앗아가는 원흉에서 삶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전활 될 것이다.
                                                                                                                        - <스트레스의 힘>, 127p 


심리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스트레스 없는 삶을 추구하다가는 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스트레스와 관련된 많은 부작용들은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노력 때문에 발생한다. 


오늘 운전 중 라디오를 듣는데 스트레스와 관련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서 코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왔는데, 즐거운 감정은 그때뿐이었다고... 다음 날 회사에 돌아와 보니 문제는 그대로였다고... 그러자 DJ가 말했다. "그런 날도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 있다면 다시 제대로 된 조언을 해보자. 

스트레스를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 보라고.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아보라고.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니체


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에 참여하면서 작성된 8번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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