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대가는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 기술을 소재로 암울한 미래상을 그려낸 드라마가 있다. 초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부정적인 모습들이 극단으로 치닫으면서 어두운 미래를 그린 '블랙미러'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람의 모든 기억을 뇌에 저장하고 언제든지 꺼내어 보기도 하고,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의식을 남편의 뇌에 주입시키기도 한다.
이 일들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기억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이야기와 같은 공상과학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론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의 책, <마음이 미래>를 읽다 보면 뇌 과학의 발전으로 바뀌게 될 미래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미디어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미래가 청사진이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암울하다.
생각을 읽는 기술은 머지않은 미래에 구현될 것이다. 이때가 되면 누군가가 내 생각을 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런 행위를 허용할지가 더 큰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누군가 비양심적인 사람이 당신의 생각이 담긴 파일을 허락 없이 훔쳐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서 '생각 읽기'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 <마음의 미래>, 128p.
실제로 일론 머스크는 뇌에 전극을 이식해 생각을 읽는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뉴트럴링크(Neuralink)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는 인간은 AI와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하기 위해 뇌에 기계를 연결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 뉴트럴링크의 생각 읽기 기술은 금세 현실화될 것만 같다.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은 이뿐 아니다. 두뇌를 위한 줄기세포를 찾거나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최신 뇌과학과 유전공학을 이용하면 뇌의 구조를 바꿔서 애초에 없던 능력을 이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 부작용은 없을까? 윤리적인 문제는 없을까?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이것이다.
모든 과학기술은 좋은 목적에 쓰일 수도 있고, 악용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좋은 목적을 가졌지만 초기 의도와 달리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뇌과학이 단기적으로 볼 때 마비 환자와 신체장애 환자의 고통을 크게 덜어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 경제와 현대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블랙 미러에서 보여주는 암울한 미래상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학자 중에는 이 기술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도 새로운 의술이 개발될 때마다 윤리적 문제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사용이 금지되거나 제한된 것은 탈리도마이드처럼 부작용이 확실한 경우뿐이었다... (중략)...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이, 결국 대중은 기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기술을 받아들일 것이며, 시간이 더 지나면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 <마음의 미래>, 128p.
시험관 아기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 교황까지 나서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지금은 불임부부가 아이를 갖는 방법의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기술에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나는 인공적으로 가해지는 대부분의 것들에는 분명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그 기술이 장점만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실험의 예를 들면, 실험 쥐 중 똑똑한 쥐들 중 일부가 보통 쥐들보다 눈에 띄게 겁 많고 소심했는데 그 이유는 기억력이 좋아지면서 과거의 실수나 심리적 상처까지 남아서 행동이 그만큼 신중해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는 미국의 한 여성은 지우고 싶은 기억까지 머리에 담고 사느라 매우 고통스럽다고 고백했다.
기억을 뇌에 주입받는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미치오 카쿠는 <마음의 미래>에서 관련 지식을 뇌에 업로드하여 한 분야를 마스터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교사들은 기초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인성교육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인성교육이 잘 될 수 있을까? 교수나 의사, 변호사 또는 과학자와 같은 전문가 되려면 지금처럼 관련 지식을 기계적으로 암기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이렇게 필요한 지식을 뇌에 주입받게 된다면 인적자원을 낭비할 일이 없을 거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새로운 기억을 뇌에 아무리 주입한다 해도 다량의 정보를 소화하고 처리하는 개인의 능력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억 주입이 지능에 변화를 미칠 수 없다고 믿는다. 많은 연구결과들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타인과 협동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 그리고 쾌락을 뒤로 미루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기계가 인간의 기억력이나 IQ와 같은 '수렴성 지능'은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반대 개념인 '발산적 지능'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의외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등)은 우리 자신-스스로만이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이 집중하는 능력, 깊게 생각하는 힘을 상실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인터넷으로 정보에 접근하기에는 쉬워졌지만 정보를 내 것으로 소화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은 더 떨어진 것 처럼 어떤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능력을 쉽게, 즉시 향상시키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연습하면 완벽해진다"는 격언처럼 훈련을 많이 할수록 작업은 더욱 쉬워진다. 암기나 기억에는 반드시 "어렵게" 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과학 기술이 아니라 견디고 꾸준히 해내는 능력, 할 수 있다는 마음이다.
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에 참여하면서 작성된 9번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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