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사 Jun 18. 2019

먼 길을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릴 때 그 답을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목적을 안다면 그것만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수 있을 수 있을 텐데...' 물론 앞만 보고 달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차안대를 씌운 경주마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제대로 풀어보기도 전에 얼른 해답지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물론 지금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내 삶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스멀스멀 생기는 것은 육아를 하면서부터다. 


차안대(눈안대)를 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들 


내가 궁금한 것은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답이다. do와 don't의 리스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지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하는 실수로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 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책을 읽는 강력한 동기 중의 하나다.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은 내가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 중에 하나다. 이 책은 '성공적으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 오랜 세월에 걸친 '성인발달 연구'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모든 부모의 궁극적인 바람은 아이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내리는 결론은 내가 찾던 해답지와 비슷했다. 특히 이 책에 신뢰가 갔던 이유는 현재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간의 전 생애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온 연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를 전향적 연구*라고 한다) 


전향적 연구는 사건 발생 당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므로 기억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객관성이 뛰어나고 신뢰성이 있는 자료를 수집할 수 있긴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돈과 행운, 연구자의 인내심, 연구 대생자의 성실한 참여 면에서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조지 베일런트가 연구했던 집단은 세 집단이었다. 하버드(하버드 졸업생), 이너시티(법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14세 남학생), 터먼 여성(아이큐 140인 여자 아이들). 세 집단의 성격은 서로 매우 달랐지만, 동시에 비슷했다. 그들은 다르면서도 같았다. 세 집단 각각으로부터 도출해 낸 결론은 대체로 비슷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과 '불행하고 병약한 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일까?


*건강한 삶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여섯 가지 변수 (p.285)

조상의 수명, 콜레스테롤, 스트레스, 부모의 특성, 유년기의 성격, 사회적 유대관계


*건강한 노년을 부르는 일곱 가지 요소 (p.289)

안정적인 결혼생활, 어려움에 대처하는 자세, 높은 교육 수준, 

금연, 적절한 음주,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체중 유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린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 일곱 가지 요소 중 4가지 이상을 충족한다고 한다.)


위의 총 13가지 요소(여섯 가지 변수+ 일곱 가지 요소)가 내가 알고 싶었던 일종의 답안지였다. 하지만 저 연구 결과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 연구도 완벽하게 통제되거나 고려되지 않거나 연구자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결론이 잘못 도출되었을 수 있고, 새로운 연구 결과가 위의 내용을 대체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한 번 따져보아야 했다. 나는 몇 가지에 주목했다.


1) 사회적 유대관계: 과연 사회적 유대관계가 건강한 삶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 마을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인 공동체였다. 이 마을에는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었는데, 로세토에서는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에 어떤 원인이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30년에 걸친 로세토 공동체 연구에서는 그들이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사회적 요인-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호 부조하는 문화"였다고 밝혔다. (참고: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로세토 효과 Roseto Effect

로세토 마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환점이 일어났는데, 젊은이들이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졸업 후에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얻은 이들은 로세토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사회적 결속과 지지가 받쳐온 로세토의 공동체 문화는 붕괴되었다. 사회적 유대가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1965년 이후로는 사망률이 다른 지역과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행복의 조건>에서 조지 베일런트가 설명한 '사회적 유대관계'는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유대감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2) 스트레스어려움에 대처하는 자세의 상관관계


터먼 여성 집단의 한 사람이었던 수잔 웰컴은 <행복의 조건>에서 '쇳조각을 금으로' 바꾸는 놀라운 삶의 태도를 가졌다고 묘사된다. 쇳조각의 경험(스트레스)을 금과 같은 경험으로 바꾼다는 것은 결국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생기기 마련이고,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이야기는 책 <스트레스의 힘>을 읽어본 사람들은 동의할 것이다) 베일런트는 방어기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은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렸다. 


우리가 흔히 정신병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은
대부분 방어기제를 '현명하게' 발달시키지 못했다는 반증일 뿐이다.
방어기제를 잘 활용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양심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방어기제를 부정적으로 이용하면,
정신병 진단을 받고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에서도 부도덕적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 조지 베일런트


3) 높은 교육 수준 (=> 교육년수)


높은 교육 수준이라고 하면 학력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다. (잘못된 번역일까?) 높은 교육 수준이라기보다는 교육년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 조지 베일런트는 교육년수가 건강한 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사회적 계급이나 지적 능력 혹은, 아이큐나 유년 시절 가정의 소득이 아니라 자기 관리와 인내심이라고 설명한다. 건강과 교육은 어느 정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교육을 많이 받고 싶어 하며 자기 관리에 충실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자기 삶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개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한결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연구 대상들이 50대일 무렵 내놓은 중간 결과에서 우리는
'(건강하고 장수하려면) 병원 가는 것보다는 배우는 데 시간을 더 투자하라'는
조언을 얻는다.
내가 "공부가 돈보다 값진 희망과 행복을 만든다"고
강력하게 설파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조지 베일런트


책 전반에 걸친 '행복하고 건강한 삶'과 '불행하고 병약한 삶'의 비교를 통해 내가 내린 답은 한 84세 연구 대상이 생각하는 삶에 대한 정의에서 찾은 것 같다. 그는 건강한 노화를 사랑하고 일하며 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행복도 이와 같을 것이다. 행복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뜻밖의 행운이나 유전자나 IQ는 행복을 결정하지 못한다. 건강한 삶은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있고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행복의 조건> 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찾아 나섰는데, 결국 계속 반복되는 결론을 얻는다. 특히 이번 책을 읽으면서 <연금술사>의 주인공이 되어서 먼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느낌이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


<연금술사>를 좋아해서 20대에 외국에 갈 때마다 찾아서 모았다..
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에 참여하면서 작성된 11번째 서평입니다. 


#씽큐베이션 #1주1독1서평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라면 어디에 집중하겠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