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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Jun 25. 2019

나는 무엇을 주고 갈 것인가

"팀장님, 왜 우셨어요?"

"팀장님, 왜 우셨어요?"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감정이 메마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유가 있다. 몇 년 사이에 돌아가신 세 분 모두 연세가 85세 이상으로 장수하셨고, 요양병원에서 계시는 동안 가족들은 충분한 작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음에 대해 담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죽음이라면 어떨까? 나의 가족이 갑자기 사고를 당한다면? 내가 지금 죽는다면?... 이런 나의 마음이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에 잘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프거나 허약하거나 죽어간다 해도 두렵지 않다. 때로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평안한 죽음을 보면서 위로도 받는다. 하지만 내 호기심은 죽음이 임박하지 않은 여유로운 순간에 느끼는 호기심일 뿐이다. 나는 진심으로 계속, 계속, 계속 살고 싶다. 나의 임종 장면을 상상할 순 있지만, 언젠가 진짜로 죽을 거라는 사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당신은? 당신도 물론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흠, 내가 죽는 건 별로 믿기지 않는다. 이 무슨 자가당착에 빠진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다들 그렇지 않나? 주변 사람이 떠난다고 상상하는 것도 힘든데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59


나는 물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 '하지만'은 계속 반복된다.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오늘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보긴 하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감정으로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안다. 이렇게 죽음에 대해 미루고 미루다가 언젠가 그 날이 온다면 (그것이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되었을 때라도) 갑작스럽고 당황할 것이 분명했다. '나의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출처: '나 혼자 산다', MBC)


그래서 '임종체험'을 다녀오기로 했다. 임종체험은 예전에 TV에서 우연히 보고 알게 됐는데, 그 숙연한 분위기를 언젠가 직접 느껴보고 싶었었다. 검색해보니 효원힐링센터라는 무료 임종체험 장소가 있어 회사 동료들과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정말 죽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죽음을 느껴볼 수 있는지였다.


영정사진 촬영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나의 우려는 대기실에서부터 사라졌다. 동료 피디들과 여기 왜 왔는지 이야기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늘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집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생각이 난 이후 계속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이 감정은 유언장을 쓸 때 제일 고조되었다. 온통 아이들... 아이들 생각뿐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엄마가 일을 너무 좋아해서 아이들과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더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너무 울어서 다음 날까지 눈이 퉁퉁 부었다...


강렬했던 순간이 지나고 집에 돌아와 냉정을 찾고 나니 왜 저리도 울었는지 부끄러움이 먼저, 그다음 아쉬움이 몰려들었다. 유언장을 길게 적긴 했는데, 온통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내용밖에 없었던 것이다. 약간의 당연한 당부 외에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인생의 유산이 없었다... 이 날이 내 마지막 날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이 깨달음이 온 뒤로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 legacy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의 입관 날, 오랜 이웃이었던 한 할아버지께서 조사를 적어주셨다. "이 지역의 정신적 지도자이셨고... 마을의 대소사에 대하여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 언제나 남다른 애향심으로 마른 길과 진창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주위의 청년이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자상하셨고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당신께서 몸담았던 교육자적 시각으로 지도해 주셨다.." 좋은 말씀으로 가득한 이 조서 내용을 전해 듣고는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내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증조 외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도 종종 생각이 난다. 엄마는 자신의 할아버지께서 '물가에서 물을 아껴쓰라'고 하신 이야기를 지금도 내게 하신다. 넘치는 환경 속에서도 아껴 쓰라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고. 외할아버지는 행동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강렬한 문장으로 유산을 남겨주셨다.


외할아버지께 드리는 조사弔詞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진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덕분에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낼 때 의식적으로 더 집중하게 되었다. 작은 행복의 순간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지? 내가 남길 유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죽음의 과정을 차례로 거쳐가며 각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와 상황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 시기에 필요한 실제적인 조언으로 가득하다. 죽음을 하나의 추상적인 이미지로 뭉뚱그리지 않고, 이렇게 각 과정을 분리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미리 생각해 놓지 않는다면 갑자기 닥친 죽음의 순간은 정신없이 휘몰아칠 것이다. 나의 죽음 앞에서 주도적인 태도를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위해서, 남겨진 삶을 위해서, 죽는 순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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