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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Jul 02. 2019

5개월만에 파트타임에서 팀장까지

내가 빠른 시간 안에 팀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체인지그라운드에 들어온 지 1년 하고 9개월이 지났다. 2년이 안 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입사 당시 회사는 한 달 직원 다섯 명의 월급 주기도 빠듯했는데 지금 직원은 13명이 되었다. 사무실은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가장 큰 변화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입사 5개월 만에 팀장이 되었고, 성장하는 즐거움과 의미를 깨달으면서 내 삶에 활력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는 걸 절감했고, 그 전의 나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여러 일들에 도전하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마라톤에 참가한 이후 꾸준히 조깅을 하게 되었다. 긍정적 변화를 겪으면서 다른 엄마들에게도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고 전도하고 다닌다. 쉐릴 샌드버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나는 이제 한국의 쉐릴 샌드버그를 꿈꾼다. 이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셰릴 샌드버그 Sheryl Sandberg

나는 체인지그라운드가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의 친구가 보내준 구인 링크에 있던 '재택근무'는 내가 회사를 선택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었다. 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동안 나는 너무 일을 하고 싶었다. 큰 아이를 임신하고 불러오는 배를 숨기며 면접을 다니다가 취업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PD는 인기직종이었기 때문에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은 넘쳤다. 취업 포기 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혼자서 다큐멘터리도 만들었고 개인사업자 등록도 했다. 회사와 정부의 홍보영상들도 제작했고, UCC를 만들었고 알바몬에서 일을 구해서 정기적으로 일을 받아서 했다. 돈은 그때도 꾸준하게 벌었기 때문에 사실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안정적이며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직장이었다. 쭈욱 혼자서 일해왔기 때문에 함께할 팀과 피드백은 생각만 해도 좋았다. 혼자서 아등바등 뭔가를 할 때마다 느낀 것이 있다. 상도 받고, 상금도 받고, 돈도 벌었지만 그 순간으로 끝이었다. 각각의 경험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력은 계속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일 좀 한번 제대로 하고 싶었다. 나는 절박했다.


신박사님한테 합격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방학이라 집에 함께 있던 초1 큰아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좋은 일이 생겼으니 엄마가 쏜다며 동네 커피숍에 가서 케이크를 사줬던 기억도 난다.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체인지그라운드에 들어와서 "함께" 성장하는 이 느낌은 우리 모든 직원이 공감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았다. 회사는 장난이 아니었고, 나는 나의 퍼포먼스를 제대로 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직원들, 특히 초창기 멤버들은 알을 깨고 나오는 시기가 한 번씩 있었다.


나에게 그 시기는 우리가 콘텐츠를 통해 "질과 양"에 대한 공부를 하던 때였다. 혁신은 질보다는 양에 의해 탄생된다는 것, 실패의 양이 성공의 질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믿음 아래 우리는 체인지그라운드 유튜브 채널에 일 3개씩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는 직원이 5명, 그중에 영상 PD는 2명이었다. 일주일에 나올 영상은 21개. 하루에 1개 이상의 영상을 만들어 내야 했다. 외주 영상 제작자들을 뽑아서 (그중에 4명이 현재 체인지그라운드 정직원이 되었다) 백업을 했지만 매일이 아슬아슬했다. 결국 일 3개 영상 송출에 구멍이 나던 날!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하소연을 했다. 나는 일 3개 영상 송출은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네가 발로 만들면 (힘을 빼고 만들면) 1시간 안에 못 만들겠냐고. 왜 못 만드냐고." 

??!!!


나의 투정에 호응을 해주기를 바랐던 남편이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말이 맞았다. 나는 내가 만족하는 퀄리티에 맞추기 위해서 작업시간을 줄이지 못하고 있었다. '질보다 양'이 더 중요하다고 말로만 이야기를 했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이 나에게는 절정의 순간이었다.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3시간을 목표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금 긴 영상이라 3시간이 조금 넘어갔지만, 최대한 잔업을 줄이고 본질에 치중했더니 3시간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만들어보니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이후로 나는 총 작업 시간 중 '반복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미친 듯이 고민과 훈련을 반복했다. 지금 나는 체인지에 올라오는 카드 영상을 3시간에 만들 수 있다. 영상에 따라 1시간 만에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내가 빠른 시간 안에 팀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시키는 일을 못 한다고 하지 않은 것이다. 또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새로운 의견을 제안하더라도 회사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면 아무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몇 번의 제안이 실패했다면 나는 처음 그대로 파트타임 업무만 기계적으로 했을 것이고 첫 문단에서 내가 언급한 변화 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책 <평균의 종말>에서는 코스트코의 한 직원의 예가 나온다. 아네트 알바레즈 피터스 Annette Alvarez-Peters는 전문대에서 몇 학기를 다니다가 21세에 회계감사직원으로 코스트코에 입사했다. 그 뒤 구매 업무로 전환되었는데, 이때 구매 업무에서 소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지점의 주류 구매자에서 코스트코의 모든 주류 구매 총괄 책임자로, 그리고 '디켄터 파워 리스트'(전 세계 와인업계에서 가장 향력 있는 인물 명단) 4위로 등극하기까지... 그녀의 경력 경로는 드라마틱하다. 회계 직원으로 시작해 자신의 결정으로 이탈리아에서의 포도 재배 품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까지 이른 것이다. 코스트코의 창업자 짐 시네갈 Jim Sinegal은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서류상으로만 보면 아네트가 와인 업계의 유력인일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 테지만, 실제로는 유력인입니다. 코스트코 외부의 사람들은 아네트의 경력 행로를 알고 나면 대부분 어리둥절해하지만 코스트코 내부에서는 아무도 그러지 않지요.
- 짐 시네갈 Jim Sinegal

아네트 알바레즈 피터스Annette Alvarez-Peters


아네트를 보며 나는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직원친화적인 회사에서 일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가 직원친화적인 회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주 1회 회의를 제외한 100% 재택근무, 매주 정량적 정성적 평가를 통해 직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연 2회 연봉협상-실제 나는 4번의 연봉 인상이 있었다), 연 22일 휴가, 연 50만 원 운동비 지원, 책 구매비 무제한 지원, 결혼식이나 출산에는 100만 원의 축하금.. 이런 것은 표면적인 것들이다. 집이 지방인 직원을 위해 회사의 방 하나를 숙소로 만들어 주고, 이층 침대를 400만 원을 들여 맞춤 제작을 했다. 어머니가 아프신 직원을 위해 병가를 내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직원이 퍼포먼스를 기대만큼 해내지 못해도 스스로 발전시켜나가도록 기다려주고 실패비용을 지불한다. 문제가 있는 직원과는 1:1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여자 직원이 과반수 이상인 우리 회사에서는 임신과 출산을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고,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 회의하러 가는 시간이 즐겁다. 직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직원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회사가 직원에게 무관심하면 그런 회사의 직원이 회사에 관심이 있을 수 없다.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말은 슬픈 이야기다. 각 직원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에서 하나의 교체 가능한 부품에 불과하다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난다고 해도 스스로가 사소한 부품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면 아이디어 실행을 추진해봐야 시간 낭비라고 생각될 수 있다. 정해진 방식에서 탈피해보고자 하는 동기도 사라질 수 있다. 서로가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겨진다면 동료 직원들과 끈끈한 관계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반대로 직원친화적인 회사, 직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회사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월마트는 테일러주의 사고방식을 채택해 직원들을 통계적으로 다루며 쉽게 교체 가능한 평균적인 사람들의 대열쯤으로 취급한다. 코스트코는 직원들의 들쭉날쭉성을 이해하려는 진정성 있는 시도를 펼치면서 직원들을 각자의 능력을 펼칠 만한 특정 맥락과 조화시키는 일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직원들이 독자적 경로를 추구하도록 북돋워준다. 코스트코는 파트타임 직원이 부사장에 오르고 회계 보조원이 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한 와인 구매자의 대열에 올라서는 일이 가능한 곳이다. 한편 직원들은 코스트코에 충성심과 동참의식으로 그 보답을 하고, 이는 결국 코스트코의 뛰어난 직무 수행, 고객 서비스, 영업 성과로 이어진다. -<평균의 종말>, p.222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는 이런 직원친화적인 회사들은 직원들의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개개인성은 사람들마다 다른 저마다의 특징을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내신과 수능점수로, 출신 학교로,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고 평가해 왔지만 우리는 그 기준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능력들이 있다는 걸 안다.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능력, 웃길 수 있는 능력... 같은 맥락으로 좋은 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모든 일을 잘 해낼 수도 없다. 체인지그라운드에 입사하기 전에 나는 경력 단절된 여성이었다. 평균주의적 관점에서 나를 바라봤다면 자격 미달이었을 내가 체인지그라운드에 입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가 나의 개개인성에 집중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나이와 경력을 먼저 보지 않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먼저 신뢰를 보여준 회사에게 나는 더 나은 퍼포먼스로 보답할 것이다. 


코스트코, 조호, 모닝스타가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조직이 직원들의 개개인성을 중요시하기로 결정 내리면 직원들에게도 좋고 시스템에도 좋다. 그 이전에는 미처 누리지 못했던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것은 서로가 윈윈하는 상생 자본주의이며 국가와 업종을 막론하고 그 어떤 기업에든 가능한 일이다.
-<평균의 종말>, p.236


직원만족은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킨다. 서비스 품질 향상은 고객의 충성도에 긍정적으로 기여를 한다. 고객 충성도는 기업의 수익성을 잘 설명해주는 요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더 성장할 수밖에 없다. 


참고: <평균의 종말>, p. 213~237/ <일취월장>, p.4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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