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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Jul 23. 2019

나는 달리는 인간이다.

'낙담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내가 달리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시즌 2까지 재밌게 봤던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 때문이다. 이 미드에 핵심 인물로 나오는 클레어(케빈 스페이시의 부인: 그녀는 시즌 6에서 대통령이 된다)는 아침마다 조깅을 한다. 외모와 몸매도 완벽할 뿐 아니라 지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그녀가 새벽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이 습관을 보면서 처음으로 조깅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기 관리하는 여성의 이미지란 이런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 이상적인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찼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달리는 그녀가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내가 하지는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건 <순간의 힘>이라는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다.


1996년, 25세의 조시 클라크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크게 상심한 그는 한동안 우울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조깅을 시작했다. 클라크는 원래 조깅을 싫어했다.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달리기는 지겹고 따분하고 힘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그의 말에 따르면 “선을 넘는 데” 성공했다. 달리기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편안하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거의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클라크는 자신이 조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평생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의 힘>, p.182


위에 나온 조지 클라크는 나 같은 사람이었다. 원래 조깅을 싫어했고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 그러나 변화의 방법으로 조깅을 선택했고, "조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가슴 벅찬 달리기의 열정을 느끼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깅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5km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하는 '소파에서 5K로'라는 프로젝트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순간의 힘>에서 소개된 이 부분,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게으름뱅이들이 5킬로미터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소파에서 5K로'가 매력적이었던 이유
1. 원래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 시작이 쉬워 보였다.
    (총 20분에 걸쳐 60초 동안 뛰고 90초 동안 걷는 운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3. 달리기는 어딘가 가서 등록을 하거나 돈을 낼 필요가 없는 진입장벽이 없는 운동이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이 프로젝트에 나도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나처럼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회사 동료 둘을 설득해서 함께 영상을 찍기로 했고, 5km 마라톤 대회에 등록을 했다. (1화. 우리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매주 영상을 송출해야 하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 있었으니 뛸 수밖에 없었다. 단숨에 동기부여와 환경설정을 한 것이다. 

약 두 달 동안 매주 3일 이상 달렸다. 업무가 많은 날은 밤 12시에도 나가서 달렸다. 하지만, 운동과는 거리가 멀리 살아왔던 나 같은 사람에게 5km 마라톤(=약 4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은 쉽지 않았다. 정말 꾸역꾸역 달려서 결국은 우리의 '소파에서 5K로' 프로젝트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9화. 내 생애 가장 강렬했던 30분)


하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마라톤 이후, 한주에 뛰는 횟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쉬지 않고 30분을 달릴 수는 있게 되었지만, 달릴 때마다 죽을 것 같았다. 평균 페이스는 7분 30초~8분으로 더 개선되지도 않았다. 달릴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지금 왜 달리고 있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는 나의 이런 기분을 '낙담의 골짜기'로 표현한다. 


우리는 종종 발전이 직선적으로 나타나리라고 기대한다. 빨리 그 결과가 나타나길 바라지만 현실에서 노력의 결과는 다소 늦게 나타난다. 몇 달이나 몇 년 후까지도 자신이 했던 일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몇 주나 몇 달 동안 어떤 결과도 없이 힘들게 노력만 하면 낙심한다. '낙담의 골짜기'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해놓은 일은 헛되지 않다. 그것은 잘 축적되어 있다. 머지않아 그동안 해온 노력들이 그 가치를 모두 드러낸 것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42
낙담의 골짜기 valley of disappointment


위 책 내용처럼 '몇 주나 몇 달 동안 어떤 결과도 없이 힘들게 노력만 하면 낙심한다'는 이야기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꾸준한 습관을 만들기 실패하는 이유가 이러한 과정의 어려움이다.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쉽게 그만두고 마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만 둘 좋은 핑곗거리(더워지는 날씨 등)를 찾던 중에 나는 '낙담의 골짜기'를 벗어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일주일 전, 아이들과 산책을 하다가 몸이 가볍게 느껴져서 '조금 빨리 달려볼까' 하고 달려봤다. 올해 2월 달리기를 처음 결심하고 1분 30초를 달리고는 숨이 차서 헉헉 거렸던 바로 그 길이었다. 놀라웠던 것은 전속력으로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숨이 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변화를 실감한 뒤로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1킬로를 평소 달리던 것보다 더 빠르게 달려봤다. 성공! 2킬로를 조금 빠르게 달려 보았다! 이것도 성공. 불가능할 것 같던 킬로미터당 6분대 페이스도 성공했다.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쌓이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 정말이었다.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정체기를 돌파할 때까지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40


가장 드라마틱했던 지난주의 기록, 평균 페이스 7분 57초-> 7분 12초-> 6분 53초.


정체기를 돌파하기까지 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있었다. 힘들고 변화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달리기가 고통스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뛰려고 밤에 나오면 풀 냄새가 나고 풀벌레 소리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분다. 달빛이 밝다. 유튜브로 어쿠스틱 팝송을 찾아 듣는데, 음악에 취해 지금 내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그 모든 순간이 너무 좋다. 이 모든 것은 신호이자 보상이었다. 밖에서 어쿠스틱 팝송을 들으면 저절로 달리는 상상을 하게 된고 즐거워 진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다. 나에게도 '달리는 DNA'가 생긴 것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마라톤을 하는 목표가 아니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정체성의 변화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막 낙담의 골짜기를 벗어났으니 좀 더 습관이 시스템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겠다. 지금 가장 문제는 달리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매일 밤, 내가 달리고 싶은 시간에 아이들이 일찍 잠에 들지 않거나, 집안일을 해야 하거나, 일을 하거나 하다 보면 시간을 놓치기 일쑤라 어떻게 하면 일상적인 습관에 달리는 습관이 이어질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앞으로 아이들이 티비보는 시간을 이용해보려고 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자주 해내면 잘하게 된다는 교훈, 그리고 노력은 헛되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못 할 거라고 강하게 믿어왔던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이 것은 어떤 분야이던지 무엇을 도전하던지간에 의식적인 노력(목표 설정과 피드백)과 습관을 유지하는 방법 (쉽고, 재미있고, 단순하게)을 적용해서 꾸준히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이다.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다음 나의 목표는 5키로를 30분에 달려보는 것이다. 분명 낙담의 골짜기는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해보려고 한다. 의식적인 노력과 습관의 힘을 나의 느리고 게으르던 몸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싶다. 언젠가 아들 셋과 함께 마라톤 10키로에 도전 하는 그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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