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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Apr 18. 2019

머리 둘레가 100명 중에 99등 이군요!

책, <평균의 종말>을 읽고...

아이가 어릴 때, 병원에 영유아 검진을 가면 이런 표를 준다.


<영유아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 (수민 9개월 당시)


"아이의 키는 100명 중의 몇 등이고, 머리둘레와 몸무게는 몇 등이군요."


의사 선생님이 이 표를 보며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걱정을 한다. 이 말은 곧 이 아이가 단계의 적절한 순서대로 발달하지 못하니 아이한테 뭔가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알려주는 통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평균보다 너무 통통하면 통통한 대로 걱정, 키가 작으면 키가 작은대로 걱정.

우리 집 아이들 셋은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공통적으로) 머리 둘레가 컸다. 저 표에서는 머리둘레가 100명 중에 무려 99등! 그런데 머리둘레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평균보다 많이 큰데... 어쩌라고?


아이의 성장이 평균에서 벗어난 엄마들은 이 표를 보며 심각성을 느끼며 대책을 세운다. 각종 비타민을 먹이거나 좀 더 먹여보려고 애를 쓴다. 비단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남들보다 얼마나 느리게 걷는지, 기저귀를 언제 떼는지, 남들보다 얼마나 늦게 말을 시작하는지, 한글은 언제 떼는지! 이 과정에서 엄마들은 각종 상술에 노출되고, 아이에 대한 사랑을 빌미로 엄마들은 많은 것을 저당 잡힌다.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방문한 한 한의원에서는 미래 아이의 키를 예측하면서 키를 키우는 보약을 먹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시작된 '평균'이라는 허상을 쫓아서 우리는 평생을 산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야 하고, 진도에 맞춰 학습을 해야 하며, 초-중-고를 졸업하고 괜찮은 대학에 입학해야 하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으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산다. '평균적인' 시간은 항상 대기 중인 스톱워치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그 시간을 놓치면 패배와 실패자라는 낙인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찍는다. 


수 세대에 걸쳐 부모들은 자녀가 평균 기준에 따라 성장하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게 됐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건강이나 사회생활이나 경력이 평균에서 너무 크게 이탈할 때면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 - <평균의 종말>, p58


그런데, 이렇게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가 있다는 믿음이 틀렸다면!?


<평균의 종말>.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평균에 물들어 있던 생각"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반박한다. 작년 7월, 이 책, <평균의 종말>을 읽고 회사에서 독서토론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많은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궁금해했던 모든 질문들이 한 번에 해소되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나중에는 이 책을 '뼈 아대' 채널에서 신박사님과 소개를 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해야 한다고. (https://youtu.be/y0HMiXzmAKw)


내가 '씽큐베이션'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첫 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이것이다. 공부를 해야 우리가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엇이 틀렸는지 알 수 있다. 뭔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 막연함을 파헤쳐서 잘못된 통념을 완전히 해소해야 한다. 특히 부모라면 더 그렇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통념이란 이런 것이다. '어떤 분야를 빠르게 배우면 재능이 있다고들 한다. 빠른 학습은 훌륭한 것이다. 빠를수록 더 똑똑하다. 똑똑한 아이들은... 행복할 것이다!?' 


책에서는 "빠를수록 더 똑똑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속도와 학습능력이 관계가 없다는 것인데, 20세기의 유명한 교육학자 벤저민 블룸은 이런 주장을 입증하고자 학생들에게 독자적 속도로 학습하도록 허용해줄 경우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구상했다. 


1) 고정 속도형 그룹 - 전통적 방식으로 수업 내용을 배우면서 고정된 지도 기간 동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2) 자율 속도형 그룹- 자율적으로 학습 진도를 나가도록 허용하는 교사에게 지도를 받아서, 학생들이 경우에 따라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조절하면서 새로운 개념마다 학습 시간을 필요한 만큼 늘리거나 줄일 수 있었다.
결과는?
1) 고정 속도형 그룹 20%가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에 반해 2) 자율 속도형 그룹은 90% 이상이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이었다. 이후로도 다른 학생들과 다른 내용으로 수차례 같은 조사가 반복됐으나 그때마다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많은 연구들이 학습 속도와 학습 능력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의 교육시스템이 학습 속도가 빠른 학생들에게는 유리했지만, 그런 학생들 못지않게 똑똑하지만 학습 속도는 느린 학생들에게는 불리한 교육 시스템이었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까?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도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토드 로즈는 중학교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나 그 이후 대학 입학자격 검정시험을 통과해 지역대학에 입학했다. 야간 수업을 들으며 주경야독한 끝에 하버드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인간발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교육 신경과학 분야의 선도적인 사상가로서,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지성, 두뇌, 교육 프로그램과 개개인학 연구소를 맡아 이끌고 있다.


또 다른 잘못된 통념의 예, '아이큐가 높으면 똑똑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더 일을 잘할 것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할 것이고, 돈을 많이 벌 것이며 더 행복할 것이다)


<핸드북 오브 인텔리전스>에서 심리학자 리처드 바그너는 아이큐와 업무 성적에 대한 리서치를 한 뒤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아이큐는 업무 성과와 관련해서는 약 4퍼센트 차이밖에 예측하지 않는다." 20퍼센트라는 수치도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인데 4퍼센트라니! 

아이큐와 업무 성과만 해도 이런데 그 뒤의 추측(명예와 부와 행복에 대한 상관관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큐와 어떤 사람이 미래에 거둘 수 있는 성취 정도의 관계는 학교를 벗어날수록 멀어진다.  


궁금했던 이런 질문들을 책을 통해 연구 결과들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니 (옆집 엄마들의 말들을 들으며 귀가 팔랑팔랑 하던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아이가 조금 느려도 괜찮다. 어떤 것을 잘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더 빨리 가고 싶은 조바심도 생기지 않는다. 


몇 년 전, 큰 아이의 학부모 모임에 갔을 때 엄마들과 대화에서 큰 벽을 경험한 적이 있다. 처음 만난 엄마들의 대화는 결국 학원 정보 교환으로 이어지곤 했는데 (특히 영어학원), 거기서 엄마들은 아이들이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아이가 뒤 떨어질까 봐'였다.


그런데 평균에 뒤쳐지고 싶지 않은 마음, 남들보다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일은 아닌가 보다.


누구나 가능한 한 평균을 훌쩍 뛰어넘으려는 압박감을 느낀다. 우리가 평균 이상이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평균 이상이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가 아주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정말 끔찍하게도!)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 <평균의 종말>, p58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자율 속도형 교육을 실현 가능한 현실로 만들 과학과 기술이 있다. 비영리 교육기관인 '칸 아카데미는' "세계 어느 곳의 누구에게나 무료로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각 학생의 학습 속도에 따라 맞춰져서 해당 학생이 현재의 내용을 완전히 익혀야만 새로운 내용으로 넘어가는 것인데 이러한 학습분야의 발전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눈높이 써밋 수학에서 AI를 통해 자율 속도형 학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성적 대신 실력의 평가. <평균의 종말>의 뒤편에 나오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맞춤이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을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다.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명문대의 위상이 아이들이 컸을 때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 아니 평균이라는 잣대에 나를 맞추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의 핵심 문장-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발전한다. 

그리고 성공으로 가는 고정된 사다리는 없다. 

성공한 인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나 자신의 특별함을 이해하고 발현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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