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꾸 일을 벌이는 이유
자꾸 일을 벌이는 나에게 엄마가 묻는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그런데 그건 나도 궁금했다. 아이들을 재우느라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다 보면 이런 생각은 꼭 든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왜'에 대한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매번 동기를 생각해 보곤 했는데, 요즘 들어서 명료해진 것 같다. 내가 경험했던 몇 가지 일들을 돌아보며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왜 사서 고생을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이었든지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패턴은 항상 비슷하다.
1. 시작은 자발적이다.
작년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들의 어린이집 재능기부 수업을 했다.
재능기부 수업이란, 학부모가 아이의 반 선생님이 돼서 30분~1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세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대한 공평하게 해 주겠다고 결심했고, 이미 큰 아이의 재능기부 수업은 모두 다 참여했기 때문에 동생들도 당연하게 신청을 했다.
2. 스트레스를 받으며 준비를 한다.
신청한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압박을 받는다. 안 그래도 바쁜데... 하지만 이왕에 하기로 한 이상 대충은 없다. 수빈이는 낙엽에 대해서 수업을 했는데, 새벽 2시에 색종이를 자르며 생각한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ㅠ
3. 어쨌든 해낸다.
항상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조그마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다 나를 주목하고 있는 그 느낌은 꽤 생동감이 있다. 이게 뭐라고 긴장도 되지만, 서툴러도 괜찮다. (심지어 이제 8번째다 보니 꽤 잘하기까지 한다. ㅋㅋ) 가장 좋은 것은 내 아이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수빈이 어깨에 들어간 뽕이 말하는 것 같다. '저 사람이 우리 엄마야!!'
4. 뿌듯해한다. "역시 하기를 잘했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에서 '역시 하기를 잘했어!'로. 이 패턴은 계속 반복된다.
작년에는 서울시에서 공모한 UCC에 지원을 했다. 이 공모전의 주제는 "아이와 나, 가정과 직장이 행복한 서울"이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이 주제에 대해 나보다 더 잘 만들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꼭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강한 동기가 있더라도... 이 UCC를 만들기 위해 휴가를 내고, 휴가 날에도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내 반대쪽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최근 읽은 책, <순간의 힘>에서는 이 반대편 본능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의 반대쪽 본능은 어떤 순간을 축소하거나 보잘것없게 만들고 싶어 한다. 감각적 매력을 박탈 해버 리거나 판돈을 낮추는 것이다...(중략)... 사람들의 열정과 활력을 좀먹는 '적당히'를 조심하라. '적당히'의 위험성을 경계하지 않으면 절정의 순간이 송두리째 산산조각 날 수 있다. 과속방지턱은 적당하다. 에베레스트산은 적당하지 않다. -<순간의 힘> (칩 히스, 댄 히스)
대충 만들 거면 시작하지 않았다. 만들면서 이미 상을 받은 것처럼 만들었고, 결국 장려상과 상금 50 만원을 받았다. 시상식이 회사 회의 날과 겹쳐서 부모님이 대신 참석해 주셨는데, 부모님은 이 날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했다. 시청 나들이도 하시고 데이트도 하셨다고. 부모님께 특별한 순간을 선물했다는 것만 생각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역시 하길 잘했다.
(2018 "아이와 나, 가정과 직장이 행복한 서울 https://youtu.be/qRL2FjfvhHU)
이 반복되는 경험의 하이라이트는 작년 교회에서 있었던 크리스마스 연례행사였다.
우리 교회에서는 조별 장기자랑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독려하는데, 우리 모임에서 내가 무심코 냈던 아이디어가 바로 채택되었고, 자연스럽게 우리 그룹 발표를 내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 주중에는 다들 바빴고, 주일에 모이면 어떻게 하냐며 고민만 하고 헤어졌다. 결국 아이디어를 낸 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행사 전 날 금요일..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간, 한 주 업무를 마무리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부릅뜨며 행사 영상을 편집하면서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미리 약속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피곤했다ㅠ) 나 혼자 하고 끝내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의상과 준비물을 준비하는 것도 우리 부부 담당이었는데, 급기야 등장인물인 모세가 쓸 '지팡이'를 구하는 일로 남편이랑 말다툼도 했다. 빨리 지팡이를 구해야 영상에 넣을 소스를 찍고 편집을 할 수 있는데, 산에 가서 쉽게 구해올 수 있다는 남편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남편은 행사 당일까지도 산에 가서 나무 막대기를 구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잔머리를 써서 집에 안 쓰는 커튼 봉을 찾아냈고, 당일 아침 집 앞에서 급하게 영상을 찍었다.
당일 조별 모여 연습과 촬영, 편집+리허설까지 마쳤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우리 조는 압도적인 1등을 했고, 우리 조는 특별한 순간을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교회 '탤런트 쇼'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한다." 하길 잘했다고."
책, <순간의 힘>에서는 이런 순간을 "가끔 아주 감동적인" 순간들이라고 표현한다.
'가끔 아주 감동적'인 순간들은 단순히 운에 맡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순간들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것들은 기획하고 설계된 절정의 순간이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대체로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 뿐이다...(중략)... 절정을 창조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의 힘>(칩 히스, 댄 히스)
결정적인 순간은 그냥 자연스럽게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사서 고생을 하면서 나는 특별한 순간들을 만들었고, 그 순간들을 통해 작은 성공과 성취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성공의 경험들은 지금의 나- 무엇이든 하면 될 거라는- 자신감이 넘치는 나를 만들었다. 이런 순간의 경험이 나 혼자 하는 개인의 경험이 아닌 단체의 경험일 때에는 (더 어렵지만) 더 폭발적이다.
최근 나는 회사 동료 둘과 특별한 순간을 계획했다. 이 순간이 지금껏 언급한 경험들과 완전히 다른데, 그 이유는 8주 간의 시간과 의식적인 노력이 들고,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순간은 5km 마라톤에 참가하여 결승점을 끊는 순간이다. 나처럼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에게는 숨이 끊어질 것처럼 힘든 순간이 있겠지만, 나에겐 확실한 믿음과 (육아와 일을 둘 다 잘하고자 하는) 강렬한 동기가 있다.
결국 일단 하면, 무조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