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도 점차 기후 변화에 봄,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 연중행사처럼 계절 바뀌기 전 옷 정리를 한다. 블루투스를 켜고 예정된 곡들을 다 듣기도 전에 정리 끝. 개운한 기분으로 둘러 보지만 작년과 별반 차이가 없다.
' 이번엔 꼭 버려야지.'
정리 시작 전 준비해 둔 빈 상자에는 작은 치수라 묵혀둔 여벌의 옷과 셔츠 종류뿐. 계절 감각도 잊은 채 언제 사용할지 모르는 스카프나 모자는 다시 제자리에 차곡차곡 넣는다.
체형 변화가 크지 않아 기존 옷에 포인트 컬러를 구색 맞춰 입는 편이고 유행과는 무관하지만, 간절기에는 쇼핑하며 득템을 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외출 빈도가 낮아지고 집콕 생활로 이지웨어를 즐겨 입게 되면서 점차 옷 구매할 일이 줄게 되고 옷은 두세 벌이면 충분하다. 차츰 슬기로운 소비생활에 익숙해 지고있다.
몇 해 전. 이사를 앞두고 보관 중인 물건들을 꺼내 정리를 시작했다. 미개봉 상태로 원형 그대로 보관된 것부터 한두 번 사용하고 방치된 물건까지 다양했다. 불필요한 생활용품은 과감히 정리한다고 해도 추억이 담긴 물건은 버릴 수 없어 재포장했다. 이사 당일. 견적표를 작성했던 소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 적은 짐이 아닌데 짐 정리를 잘해서 보관하셨네요. ”
버리지 못하는 미련? 아님 채우려는 욕심?! 이런저런 이유로 쌓아둔 물건들. 이사 후 용도에 따라 재배치하며 또 한차례 정리를 시작했다.
' 이게 뭐지? 깨지는 물건인가? '
에어캡으로 돌돌 말아 겹겹이 쌓여 있는 걸 풀어 보니 비단 한복을 입은 관절 인형 2개. 잠시 그때 그 시절이 스치듯 지나갔다.
" 곱고 예쁜 아가씨들을 꼭꼭 숨겨 두는 건 아닌데… 어쩌지? 후흠! 어디 둘 곳이 마땅치 않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리저리 둘러봐도 딱히 어울리는 곳이 없다.
띠용♪ = N 총연 카페 플리마켓 공고
' 어? 플리마켓? 참가해 보고 싶었는데 신청해 볼까? '
토요일 오전. 정리함을 챙겨 플리마켓 장소인 공원으로 향했다. 정해진 자리에 물건을 세팅하고 있는데 유치원생 꼬마와 엄마가 다가온다.
“ 저…. 이것 얼마예요? ”
“ 아, 네. 글쎄요. 처음이라 가격 책정을 못 하겠네요. 그건 새것이라서요. 만원?! ”
“ 요즘 보기 드문 한복 입은 관절 인형이네요. 옷감도 실크 같고요.”
“ 알아봐 주시니 감사하네요. 네, 저희 집에는 어울리지 않아 상자에 넣어 보관만 했어요”
“ 실은 언니가 국제결혼을 해서 미국 갔거든요. 선물로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 그래요? 주인을 만난 것 같네요. 자매라 둘이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모두 사실래요? 가격 걱정하지 마시고요,”
“ 그러면 저야 좋죠. 감사해요”
플리마켓도 경험해 보고 내게 쓸모없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어 흐뭇한 하루였다.
몇 년 전부터 여러 매체에서 화두로 다루었던 ' 미니멀라이프(simple living) ’ 높은 관심만큼 화제성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방식의 인식 변화에 한몫했다.
주변을 정리함으로 얻어지는 생활의 질서는 삶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 정리도 같은 맥락에서 비우므로 얻어지는 내면의 고요함으로 충만한 삶을 지향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물의 정리와는 다르게 변화무쌍한 마음 정리는 매번 제자리를 맴돈다.
무엇을 더하고 빼야 하는가. 멀고 먼 나와의 줄다리기. 늘 선택의 갈림길이다. 유한한 삶.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자처럼 가벼운 짐 하나만 가지고 살 순 없을까. 꼬리 물듯 어지럽히는 잡다한 생각을 일괄 삭제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실행에 옮겨 볼 때다.
♬빠-밤빠. 빠밤-빠. 빠밤-빠. 빰 빠바-밤 “ 그래! 결심했어! ” ->휘재 버전 :)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새롭고 맑은 기운으로 다시 채워지는 그 날을 위해.
내 마음을 수시로 돌아보고 리셋하는 일.
바로 오늘의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