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껌 파는 소녀
Re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껌 파는 소녀
껌 사세요. 껌! 달콤한 껌 있어요. 껌 한 통만 사주세요! 네?
1990년 12월
7살 소녀 꼬미는 산동네 지하 단칸 셋방에 병든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와 버스로 두 정거장 되는 지하철역까지 매일 걸어갑니다.
왜냐고요? 껌을 팔기 위해서랍니다.
꼬미는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습니다.
어느 날은 껌을 팔다가 경찰 아저씨에게 들켜서 혼이 납니다.
"여기서 이런 일 하면 안 돼. 집이 어디니?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아저씨, 한 번만 봐주세요. 네?
갈 데가 없어서 그래요. “
또 어떤 날은 빡빡머리를 하고 팔뚝에 커다란 용을 그린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이 나타납니다.
아저씨들은 껌 통을 바닥에 홱 던지고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습니다.
“ 야, 여기가 어딘데 함부로 껌을 팔아!!
콱! 저리 안가? ”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껌을 팔러 다니는 소녀.
꼬미는 매일매일 기도합니다.
“ 오늘도 껌을 팔아야 약도 사고 빵도 살 수 있어요.
제발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세요.”
쌩 - 쌩 휘 - 위 - 휙
덜컹덜컹
산동네 지하 셋방에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쌩-쌩 휘- 위휙. 덜컹덜컹.
간신히 한쪽 귀퉁이만 붙어 달랑거리는 대문이 바람에 덜컹거립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
한 발 짝만 잘못 디디면 쫘-----악 미끄러져 데굴데굴
구르는 위험한 비탈길.
" 아빠, 어디 가지 마~? 꼼짝 말고 가만히 집에 있어~?
위험해. 알았지? "
" 이 추운 날 어디 가니? 꼬미야, 그냥 집에 있어.
나가지 말고. 웁으흠. 쿨럭쿨럭 "
아버지는 집을 나서는 꼬미를 붙잡지 못합니다. 당장 오늘 저녁 먹을 것이 없어 걱정이니까요.
대문 밖 계단은 어젯밤 내린 눈으로 살얼음이 끼어 미끈거립니다.
" 아~ 유리 계단 같아. 어쩌지..."
길고 긴 계단이 미끄러워 허리를 구부립니다. 가재처럼 한 계단 한 계단 조심히 내려옵니다.
작년에 주인집 할머니가 대문 앞에 내다 버린 손주 운동화. 작은 발의 꼬미가 신기엔
크고 밑창이 닳아 너덜너덜합니다.
" 내 발은 언제 크지~? 신발이 너무 커서 걷기 불편해.
발이 너무 아파."
한 번도 세탁 안 한 솜 점퍼는 군데군데 찢어지고 까맣게 물이 들어 무릎까지 내려옵니다.
" 내 키는 언제 크지?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무거워 "
아랫동네 부잣집 담벼락에 버려진 꽃무늬 원피스를 발견한 날.
꼬미는 난생처음 생일선물 받은 사람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뻤습니다.
" 어-? 작아? 아니야! 입을 수 있어. “
오래 입어 닳고 닳아 예쁜 꽃분홍 무늬가 군데 군데 누렇고
꼬질꼬질 잿빛 꽃무늬로 변했습니다.
작지만 깨끗하고 발목까지 내려왔던 꽃분홍 원피스는
이제는 낡아 실밥이 뜯어져서 무릎이 다 보입니다.
짝짝이 양말. 짤막한 원피스.
무릎까지 내려온 낡은 솜 점퍼. 구멍 송송 뚫린 장갑.
7살 꼬미는 매섭게 추운 겨울이 너무나 무섭고 힘이 듭니다.
" 껌 사세요. 껌 한 통만 사주세요. 한 통에 500원입니다 "
어둑어둑해진 겨울밤
길에 오가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하나둘 집으로 돌아갑니다.
" 엄마, 쟤 좀 봐. 거지인가 봐. 신발이 빵꾸 났어."
꼬미는 창피해서 엄지발가락을 구멍 난 신발 안으로 쏙 집어넣습니다.
" 그런 말 하면 못써.
그런데, 꼬마야.
넌 추운데 왜 여기 있니? 얼른 집에 가."
꼬미는 엄마 손을 잡고 가는 꼬마 친구가 마냥 부럽습니다.
" 엄... 마 "
꼬미는 태어나서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입니다.
" 껌 사세요. 껌이요. 한 통에 500원입니다.
아... 배고파 "
오늘 아침 어제 먹다 남은 빵 반쪽을 물에 녹여먹은 게 전부입니다
" 흡.흡...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네? 아! 만두다. "
꼬미는 홀린 듯 폴~폴 나는 만두 냄새를 따라가 가게 앞에 섭니다.
" 만두 줄까? “
"저.. 만두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
" 하나는 안 팔아!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져.
저리 가! 재수 없게 “
꼬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툭 떨군 어깨로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 껌 사세요. 껌. 껌 좀 사세요., 꼬르륵!
아... 안 되겠다. 이젠 배가 너무 고파 소리도 안 나와 "
꼬미는 뒤적뒤적 껌 한 통을 꺼냅니다. 그중 하나를 까서 두세 번 접어 입에 넣었습니다.
" 아~ 달콤해. 쬽쬽. 맛있다! 하나 더, 또 하나., 또, 또 , 또. “
어느새 껌 한 통을 다 까서 입에 넣었습니다. 작은 입이 얼어서 오물거리기 쉽지 않습니다.
잘근잘근. 짝짝. 단물은 빠지고 동그란 고무찰흙이 만들어졌습니다.
후 - 후----♡
꼬미는 혀를 동그랗게 말아 오므리고 힘껏 껌 풍선을 불어봅니다.
사시가 된 두 눈. 빵빵한 두 볼. 마치 호빵맨이 된듯합니다.
두 눈을 꼭 감은 꼬미는 맛있는 음식을 떠올립니다.
” 아, 먹고 싶다. 쭙.쭙.“
그 순간. 빵--♡
" 어? 어어, 우와 ~~! 맛있겠다-아!
이건 초콜릿 케이크. 이건 치킨, 내가 좋아하는 솜사탕 ”
풍선껌이 터지자 초콜릿 케이크. 치킨. 마시멜로.
곰돌이 젤리. 솜사탕.
꼬미가 먹고 싶은 음식들이 다 있습니다.
다시 풍선껌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질겅질겅 씹어 동그랗게 만듭니다.
빵빵한 볼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불어봅니다.
후-후 --♡ 풉! 파 - 팡*
" 어, 어 -엇. 꽃무늬 옷이다! 우와 ~~~!
빨간색 잠바. 보라색 부츠. 하얀 털장갑 “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휘둥그레 한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는 꼬미.
이미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 우와 ~! 너무 이쁘다. 아... 깨끗한 옷.
어? 내 몸에 딱! 맞네 ”
“ 우왕~! 털 신발. 내 발에 꼭 맞아."
"아! 하얀 털장갑. 이젠 손 안 시리겠다.”
“아... 따뜻해. 꿈일까? 아냐... 꿈이 아니었으면 "
" 제발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해 주세요. 네? ”
휘 - 익 쉬 - 쉭
오늘따라 겨울바람이 더 매섭게 휘몰아칩니다. 꼬미는 구멍 송송 뚫린 장갑 사이로 삐죽이 나온
빨갛게 언 손가락을 입에 대고 호호 불어봅니다.
" 아이~ 추워. 바람님, 바람님. 조금만 천천히 지나가세요."
그때였어요.
거칠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해지며 새털처럼 가벼운 꼬미를 뒤에서 번쩍 들어 감싸 안았어요.
둥실둥실 흔들리는 바람 요람에 꼬미의 몸이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 아-함~@ 졸려. 집에 가야 하는데...”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듭니다.
하늘에서 소리 없이 함박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꽃분홍 원피스를 입고 보랏빛 털부츠를 신고
포실포실 하얀 털장갑을 끼고 몸에 딱 맞는 빨간 오리털 점퍼를 입은 꼬미는
마음 따뜻한 동장군 품에 안겨 하늘 높이 높이 올라갑니다.
*성냥팔이 소녀를 재창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