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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과나무 Jun 08. 2022

달빛을 받으며 기다리는 노인

질문하는 글쓰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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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받으며 기다리는 노인

노래를 잘하는 청년이 있었어요.

잘 생긴 콧날에

갸름한 턱선을 가진 그가 노래를 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촉촉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어요.

언제나 노래를 하던 그는

갑자기 노래를 멈추었어요.

그를 바라보던 수많은 눈동자 가운데

단 한 사람의 눈동자가 그의 노래를 멈추도록 만들었어요.

사람들은 그가 다시 노래하길 기다렸어요.

하지만 굳어버린 청년은 더이상 노래를 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바라보던 눈동자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떠났어요.

그는 자신의 노래를 멈추게 만든 게 무엇인지 몰랐어요.

언제나 노래를 해왔으니까 잘 먹고, 푹 자고 나면 

다시 노래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노래는 나오지 않았어요.

눈동자를 만났던 자리에 멈춰서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그리운 마음이 커지는만큼 몸도 자라났어요.

청년의 몸이 나무만큼 자라자 청년은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언덕만큼 자라자 청년은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

세월이 흐르고, 겨울이 왔어요. 

산처럼 변해버린 청년은 노인이 되었어요.

노인의 몸 위로 하얀 눈이 내렸어요. 


 산보다 더 큰 기린

청년의 노래를 그리워하던 이가 있었어요.

단 한 번 들렀던 도시에서 잠시 들었을 뿐이지만

어디서도 들은 적 없는 멜로디가 머리에 남았어요.

모든 사람이 청년의 노래를 잊었지만

그는 잊지 않았어요.

점점 몸이 작아지는 병에 걸린 그녀는

위험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대신 바깥세상이 그리울 때마다 

청년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그러다가 잠이 들면 

그녀는 산보다 더 커다란 기린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다주는 꿈을 꾸었어요.

고래가 끄는 비행기를 타고

기린의 높은 키 때문에

기린의 머리 위는 무서웠지만

그녀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는 유일한 친구였어요.

어느 날 기린은 슬픈 소식을 가져왔어요.

한동안 그녀를 만나러 오지 못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기린은 기쁜 소식도 함께 가져왔어요.

기린 대신 힘이 센 친구를 불렀으니

노래를 계속 불러 달라고 했어요.


 비행기를 끄는 고래

과연 산처럼 큰 기린보다 더 힘이 센 친구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오랜 친구인 기린을 믿었어요. 

노래를 부르던 중 창밖을 보니 

비행기가 둥둥 떠 있었어요. 

비행기와 연결된 긴 끈 끝엔 

아름답고, 거대한 고래가 있었어요.

고래는 반갑다는 듯 지느러미 인사를 건넸어요.

그녀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고래가 끄는 비행기에 얼른 올라탔어요.


순록이 이끄는 곳으로

고래가 내려준 곳은 추운 나라였어요.

숨 쉴 때마다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어요.

이렇게 추운 곳에 말없이 

내려주고 떠난 고래가 미웠어요.

고래가 내려준 곳에 서 있는데 

잠시 후 근사한 뿔을 가진 작은 순록이 

타박타박 소리를 내며 다가왔어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순록일 거예요.

순록이 건네준 방울 털모자를 썼어요.

귀여운 모자가 달려있는 니트 점퍼와 두툼한 바지도 입었어요.

점퍼와 바지에 수놓아진 줄무늬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작은 순록은 그녀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순록은 겨울 들판을 지나

봄이 온 개울을 건넜어요.

여름이 뜨겁게 넘실대는 호수를 지나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숲에 다다랐어요.


 하늘 그네를 타고

순록은 아름다운 숲에 그녀를 내려줬어요. 

순록은 풀을 뜯고, 그녀는 산딸기를 따서 먹었어요.

순록이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그녀는 순록을 쓰다듬으며 잠이 들었어요.

그녀는 자신이 자랐던 도시를 바라보는 꿈을 꾸었어요. 

자신만 작은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니 도시 빌딩도 그녀 손바닥보다 작네요.

그녀는 신나게 그네를 타며 작디작은 빌딩 구경을 합니다.|


순록이 남기고 간 선물

그녀가 잠에서 깨어보니 순록은 어디론가 가버렸군요.

순록을 쓰다듬어 주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순록은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남기고 갔습니다.

대체 순록은 무엇을 남기고 떠났을까요.

가까이 가서 보니 여행 가방입니다.

열어보니 카메라가 들어있습니다.

종이와 펜도 들어있고,

고글이 달린 모자도 들어있습니다.

이제부터 혼자 여행하라는 뜻일까요.

그녀 곁엔 기린도 고래도, 순록도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덕분에 

세상 어디로든 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절로 노래가 나왔습니다. 

노래를 부르자 가방이 들썩이는군요.

가방에 올라타서 눌렀더니

가방이 그녀를 태우고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그녀는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요.

멀리 있던 겨울 산 가까이 갈수록

그녀의 노래가 더 아름다워집니다.

설마 누군가 화음을 넣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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