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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프랑스시골소녀 Apr 24. 2021

프랑스어를 위하여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내 이름을 급하게 부르지 않는다.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 이름이 중요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냥 난 여기 함께 생활하는 사람 일뿐, 

때로는 이름보다 중요한 “나”에 대한 존재를 불러주는 듯한 눈빛을 받는다. 

이름보다 나 자신의 "존재"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하루하루가 이곳에 부는 바람처럼 지나간다.
프랑스 시골 살이를 시작한 지 벌써 4일째, 적응이랄 것도 없다. 너무 단조롭고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레이첼과 나는 매일 아침을 먹은 후 치즈를 만든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1.     전날 소금 뿌려둔 치즈를 창고로 옮겨 말린다.
2.     전날 틀에 눌러놓은 치즈를 틀에서 빼내어 소금을 뿌려 보관용 박스에 넣는다.
3.     전날 짠 염소젖에 박테리아를 넣어두어 
몽글몽글해진 우유를 치즈 모양내는 구멍 난 틀에 눌러 담는다.


이렇게 매일 작은 치즈 4개씩 만드는 작은 일과를 아침마다 반복한다. 


아직 우리가 만든 염소 치즈를 맛보진 못했지만 어떤 맛일지 상상조차 안된다. 

염소치즈는 프랑스에서도 비싼 치즈에 속한다던데 곧 맛보는 날이 오겠지? 


내가 만든 염소 치즈


다시 시작된 나른한 점심시간

레이첼이 갑자기 예쁘게 화장까지 하고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아 오늘 스카이프로 인터뷰가 있거든. 프랑스에서 일 구하고 싶어서, 인터뷰하게 되었어.. 비록 불어는 못하지만 말이야.."
“아니야 할 수 있을 거야. 넌 영어를 잘하잖아. 행운을 빌어”
"맞아! 난 영어를 잘해. 고마워"
 
조금 설레어 보이는 그녀가 인터뷰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주었고,
나는 가장 시원한 해먹에 누워 그녀가 우아한 영국식 발음으로 인터뷰할 모습을 상상하며 낮잠에 들었다.

낮 2시 

하루 종일 레이첼과 안 되는 불어로 이야기하려고 하니 하루가 더 피곤한 거 같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다. 둘 다 한 달 뒤에 조금이나마 유창해질 우리의 불어 실력을 기대하며 서로 가르쳐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서로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이다.

우리의 대화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처음보다는, 조금씩 알아듣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신기해하며 서로 아는 단어가 나오 기라도 하면 리액션하기 바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크리스티앙 아저씨는 갑자기 마트에 가자고 제안했다.

 

마트에서 아저씨는 제일 먼저 문구 코너로 가더니 아주 신중하게 공책을 고르고 있었다. 

갑자기 공책?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나를 보며 외친다. 


프랑스어를 위해

무슨 말일까? 프랑스어를 위해?

우리의 공책과 크리스티앙 아저씨의 최애 맥주


퇴직을 하고 남프랑스 시골마을로 온 그는, 

스위스에서 20년 동안 프랑스어를 가르치신 선생님이다.
레이첼과 내가 늘 헤매는 불어를 가만히 지켜보더니결심하신 듯 그는 저녁마다 불어로 일기를 써오면 수정해주겠다며 각자 2권씩 선물해주셨다.

한 권은 일기를 써오면 수정을 받는 연습용

다른 한 권은 수정받은 글을 새 공책에 옮겨 적어 공부하는 복습용.
역시 선생님이다.


프랑스 시골살이의 시작을 프랑스어 선생님과 함께하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어를 위해 

오늘도 한 문장 한 문장 적어본다. 




그리고 공책과 함께 선물해주신 물주머니 하나.

요 며칠 비가 와서 기온이 내려간 이곳에서, 캠핑카에서 춥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는지 뜨거운 물을 부어 안고 자라며 같이 선물해주었다. 


사실 이불 안이 춥다기보다, 얼굴을 내밀면 약간 코가 시린 정도이다. 

동양인인 내 코가 이 정도로 시린데, 코가 큰 유럽인인 레이첼과 크리스티앙은 얼마나 더 시릴까 하는

쓸데없는 남 걱정을 잠시 하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캠핑카로 돌아간다.


오늘도 Mer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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