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악의 기운을 기민하게 감각하는 엘렌은 남편 토마스가 그저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새 신랑 토마스는 어여쁜 아내에게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멋진 남편이 되고 싶다. 그는 상사의 명령에 따라 고택을 사들이기로 한 올록 백작과 계약을 확정 짓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우여곡절 끝에 올록 성에 도착한 토마스는 올록 백작이 엘렌을 노리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엘렌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돌아오지만, 토마스에게는 고약한 운명의 흐름을 바꿀 힘이 없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무력감이 명백해질 뿐이다. 곁에 둔 아름다운 여인을 평생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젊은 이성애자 남성의 꿈은 결국 최악의 악몽으로 치닫는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배우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회스 부부가 바로 옆에서 죽음의 소리가 들려와도 안온한 일상을 따박따박 살아가는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 진실하게 보여 준다. 이를 위해 산드라 휠러와 크리스티안 프리델은 그 역겨운 둔감함이 자기 몸에서 피어나도록 지켜보아야 했다. 설령 연기라고 해도 나와 다른 그들의 현실이라고 여기고 싶었던 역사적 진실과 내가 동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자신의 인간성을 밑바닥부터 회의해 보는 일은 존엄을 깊숙이 건드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특별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도쿄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잘 자리 잡은 루틴을 반복할 뿐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두 가지 마법이 일어난다.
하나는,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아주 잠깐 비추어도 관객은 그 순간 앞뒤로 이불을 개키고 계단을 내려와 칫솔질을 하고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았을 일상의 시간을 덧붙여 받아들인다. 영화는 1초 지나가지만 관객의 머릿속에는 몇 백 초가 지나간다.
또 다른 마법은, 히라야마가 루틴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가늠하며 여러 만남과 사건들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겉보기에 사소한 일들이 잔잔한 연못 같았던 그의 일상에 얼마나 큰 파동을 일으키는지 기민하게 느낄 수 있다.
히라야마는 드라마에 휘말리는 캐릭터가 아닌 일상을 살아 내는 인간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의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과거를 알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될 거라는 믿음을 거스르려는 듯하다. 카세트에서 올드 팝이 흐르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화장실 변기를 꼼꼼하게 닦고, 문고판 책을 읽다 잠드는 순간들을 시간 들여 지켜보는 것이 곧 히라야마를 덜 오해하는 길이다.
스즈메는 소타를 구하는 여정 중에 두 번이나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어려서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뒤 삶과 죽음은 우연히 결정될 따름이라고 믿어 왔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허망하게 울던 아이는 이제 누군가를 대신해 죽을 각오를 한다. 문 너머의 세계에서 스즈메는 의식을 잃었던 소타를 깨우고, 두 사람은 미미즈에 요석을 꽂아 지진을 막는다. 그 덕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목숨을 바쳐 지진을 막으려던 스즈메와 소타에게 죽음이 정말 코앞까지 다가온다. 그제야 그들은 사실 죽기 두렵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죽음을 불사하고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다. 살릴 수 있는데 손을 뻗지 않을 수가 없어서다.
캐롤의 초대로 두 사람은 식당에서 다시 만난다. 캐롤은 하지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고, 테레즈에게는 결혼하자고 채근하는 남자친구 리처드가 있다. 캐롤이 결혼을 원하는지 묻자, 테레즈는 식사 메뉴도 스스로 못 고른다고 답한다. 이에 캐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캐롤에게도 확신이 부족한 시절이 있었을 테고, 떠밀리듯 하지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자신과 비슷한 실수에 어그러지는 삶을 앞둔 테레즈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진 듯하다.
어제까지 어깨를 맞대던 동지를 내일이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독립 운동가들의 하루하루를 복구하고자 하는 영화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사건은 강렬하고 기억하기 쉽다. 그런데 그 사건 앞뒤로 켜켜이 쌓여 있는 고되고 지난한 시간을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간을 살아낸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오늘 내가 안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