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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Dec 13. 2021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은 희생되어도 되는 것인가.


오늘 남편이 실험 마무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회사에 가야 한다고 했다. 어제오늘 늦잠을 잔 남편에게 "아이들도 데리고 갈 수 있냐"라고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허리가 너무 아팠던 터라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남편에게 최대한 늦게 와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 없는 동안 한 바퀴 걷고 서점에 가서 눈에 띄는 책 없나 둘러보고 집에 와서 밀키트 식품을 데워 먹고 있으니 집으로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왜 이리도 쏜살같이 흐르는 것인가. 서둘러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남편이 먹을 끼니(?)를 준비했다.


실험실 들어가기 전


"엄마, 맛있는 냄새가 나요!"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소리치며 들어온다.


"재밌었어?"


"네! 저 쥐 만졌으니 제 손 만지지 마세요~"


아드님이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오늘 흰 쥐와 까만 쥐도 봤어요."


따님도 상기된 표정이다.


아이들이 손을 씻은 후 식탁으로 오길래 오늘 뭐 실험하고 봤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그랬다니 아드님 표정이 갑자기 좀 어두워지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쥐에게 암세포 투어 한 걸 봤는데 아파서인지 움직임이 없었어요. 그리고 많이 가렵고 힘든지 몸을 긁고.."


오늘 아빠가 실험한 걸 옆에서 본 내용을 말하던 아드님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안아주니 소리 없이 흐느꼈다.


"에고.... 쥐가 아파하는 게 느껴져서 많이 힘들고 속상했구나..."


아드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마음이 쓰였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아들은 괜찮아 보였다.






잠들기 전, 다 같이 누워 오늘 감사한 일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따님은, "엄마가 내가 원하는 거 사주려 해서 감사해요."


아드님은, "저는 매일매일 모든 게 감사해요."라는 말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오늘 너희들이 건강하게 잘 놀고 지내줘서 감사하고 아빠 회사에도 같이 가서 실험한 것도 감사하고..."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아들이 조용히 말한다.


"오늘 그 쥐가 너무 불쌍해요. 오늘 일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그러면서 다시금 아까의 상황이 생각났는지 눈물을 보였다.


"오늘 쥐 실험한 것 본 게 많이 힘들었구나.."


"하얀 쥐랑 까만 쥐가 있었는데 까만 쥐도 아픈 게 생겨서 간지러운 지 막 긁고 서로 할퀴고 싸웠어요."


따님이 옆에서 거든다. 그러자 아드님이 울먹이며 말한다.


"난 동물 실험에 반대할 거야."


"인간을 위해 동물이 죽어야 하는 그 상황이 마음 아팠구나.. 그래서 엄마가 아빠한테도 실험을 해서 아프거나 죽게 되는 쥐들을 위해 꼭 추모하는 기도를 하라고 얘기했었어"


아들이 소리 내어 운다.


"그래.. 그 마음 엄마도 너무 이해가 간다. 그래서 요즘은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인간을 위해 동물들이 실험 대상이 되어서 죽는 게 비윤리적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래서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세포 실험만 하거나 다른 방식의 실험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지.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혹시 어떤 제품이나 그런 걸 만들 때도 이런 윤리적인 것들을 생각해서 만든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말이 길어지자 따님은 "나 이제 잘 거니까 조용히 해주세요."라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동안 아드님은 눈을 뜨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든 후, 남편에게 오늘 어떤 실험을 아이들이 본 건지 물어봤다. 요즘 항암제 관련 일들이 많아 관련 실험을 본 건데 쥐들에게 항암제를 투한 후 종양이 생긴 쥐들을 아이들이 본 것이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암세포를 투한 자리가 툭 튀어나오거나 검게 변해있었다. 종양세포가 커진 쥐들은 아이들 말대로 가렵고 아팠는지 스스로 긁어서 상처가 나 있었다.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자 남편은 "그래서 오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거구나. 아빠 회사처럼 과학 실험하는 회사들은 다 동물 실험을 하냐고 묻더라고."라고 한다.


"근데 쥐가 인간이랑 DNA 구조가 완전히 같지도 않은데 왜 실험을 하는 거야?"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로 실험을 하려면 침팬지로 해야겠지. 그런데 침팬지는 일단 한 마리당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잖아. 대신 쥐의 경우는 개체도 빠르게 자라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동물 실험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거지. 그래서 맨 처음에 쥐로 실험을 하고 그다음에는 토끼, 개, 이런 식으로 하는데 개에서 끝나고 바로 임상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이 있어."


"인간을 위해서 결국 다른 생명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건가. 꼭 동물 실험을 해야 하는 거야?"


"만약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바로 인간에게 임상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게 해서 문제가 생기면 그건 누가 책임질 건데?"


"........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인 건가...? 인간을 위한다는 그런 행동들이 그런데 결국 더 파괴적인 결과로 가는 건 아닌 지 모르겠어. 의학이 발전하면서 항생제를 발명했지만 그로 인해 슈퍼 박테리아가 생겨났잖아.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결국 그건 슈퍼 박테리아처럼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들을 만들어 내고 있고,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는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지금처럼 제약회사들이 있는 한 계속 백신이나 치료제는 만들어 낼 테니까.. 이것도 결국 필요 악인가.."


동물 실험을 반대한다는 아들의 의견으로 토론하다 보니 코로나에 델타, 오미크론으로 진화하고 있는 현재 우리의 상황까지 생각해 보게 됐다. 인간을 위해 다른 동물을 죽여도 된다는 건, 지극히 인간 위주의 관점이 아닐까. 어찌 인간의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득 부처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부처님이 전생에서 시비(尸毘) 왕으로 살아갈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시비 왕이 산책을 하고 있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매가 쫓아오니 숨겨달라고 했다. 왕은 비둘기를 숨겨줬고, 잠시 후 매가 와서 혹시 비둘기를 못 봤느냐고 물었다. 왕은 매에게 비둘기를 잡아먹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고기를 주겠다고 했다. 그런 뒤 자신의 왼쪽 허벅지의 살을 베어 저울에 올리고 반대쪽에 비둘기가 올라가게 했다. 그런데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왕은 오른쪽 허벅지 살까지 베어 저울에 올렸다. 그런데도 비둘기 쪽으로 계속 기우는 것이었다. 결국 왕이 직접 저울 위로 올라가자 마침내 저율이 균형을 이루었다.          

                                                                                                                   <자타카>



인간이든 미든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고 귀하다.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현주소에서는 어찌 보면 불가피한 상황일 수도 있다. 앞으로 좀 더 과학이 발전한다면 다른 대안이 생길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주제다.



번호로 매겨지는 실험용 쥐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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