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미덕

by 쁘띠선비

나는 행동이 느린 편이다. 느린 데에는 다양한 이유를 붙일 수 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한 탓에 다 푼 시험지를 시험시간이 끝날 때까지 검토했던 습관이 몸에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로 인해 파생된 혹은 태생적인 꼼꼼한 성향 때문일 수 있으며, 역시 거기로부터 파생이 됐거나 타고나기를 실패와 실수에 대한 역치가 낮기 때문에 일 수 있다.


퍼져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성실함에도 일을 빠르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걸 요새 게으른 완벽주의라고 하던가?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일이 최근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어 가는 걸 보면서 나의 느릿함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이해당사자가 여럿이었고, 아무도 내게 가이드와 마감기한을 주지 않았기에 늦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고 나서 내가 느낀 후련함을 생각하니 내가 일을 많이 미루고 있었구나, 쓸데없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주 나를 반추하는 성향 때문에 내 행동을 빠르게 하려고 과거에도 노력을 해왔다. '10%만 계획하고 90% 행동하자'라고 핸드폰 메모에 적어두기도 했고, 공자 선생님이 나와 같은 제자에게 '재사가의' 두 번 생각하면 충분하니 행동하라라고 했던 말을 되새기기도 했다(참고로 중용에 대해 공자 선생님에게 물으니 나온 이야기다. 망설이는 이에게는 재사가의를, 너무 서두르는 이에게는 세심하게 하라고 하셨다)


요새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활용해서 내 실행력을 높여보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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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0번을 추가해 가장 마음에 쓰이는 일 한 가지를 제일 먼저 하고(마음의 평화가 가장 우선이다) 1부터 4번 순서로 일의 순서를 정하고 일을 처리해보려고 한다. 보통은 0~1만 잘 처리해도 마음이 편하고, 그 남는 시간에 이후 일을 처리해도 충분한 것 같다. 보통은 0번의 일을 후순위로 두고 마음이 불편한 적이 많고, 또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적이 많았다.


원래 행동은 미덕이었다. 그러니까 'Just Do it'이라는 걸출한 카피를 나왔을 거고, 아침에 이불 잘 개고 그것을 네 하루의 첫 번째 성취로 삼으라는 고전적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근데 점점 행동의 폭을 넓혀주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각종 툴(feat. AI)이 나오면서 행동이 더욱 미덕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가 빠른 행동으로 성과를 내는 집단이고, 좋은 스타트업을 만나려면 나 또한 그러한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다짐해도(이전에도 그러한 것처럼), 꼼꼼한, 그래서 약간 주저하는 내 모습을 모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기질이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꼼꼼한 게 기본적으로 마음이 편하다. 다만 단점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행동이 미덕이라고 믿고 나아가보자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검도로 비유해 보자면, 상대와 칼을 겨눈 대련의 상황에서 멋들어진 계획은 그다지 먹히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대의 중심을 깨뜨리기 위한 어떠한 행동이 득점과 승리를 만들어낸다. 망설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 한 방 얻어맞으면 먼저 나서지 못함이 아쉽다.


방어만 하다가 얻어맞는 것보다는 먼저 공격하고 역공을 당하는 편이 낫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보다는 실수와 실패에 익숙한 꼼꼼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일이든 일상이든 미루지 말고 행동하기로 했다. 지난 주말 밤에 부랴부랴 가서 등록한 헬스장에 매일 아침 3km를 달리려고 하고, 브런치가 글 안 쓴 지가 몇백 일이 되었다는 알림을 보내기 전에 이전부터 생각해 둔 창업자에게 도움이 되는 벤처캐피탈 이야기를 써보고, 산더미 같이 쌓아둔 투자 관련해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것이다.


한병철 '피로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산업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여 시간의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준비는 그동안 많이 한 것 같다. 지금은 그런 마음의 상태도 아니거니와, 하고 싶은 일을 필요한 순간에 해야 하는 순간이기에 미루지 않고 행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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