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일하면서 제일 많이 한 것은 '투자검토'이다. 투자여부를 결정하고, 투자심의위원회(투심)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다.
원래 내가 가진 습성상, 또 내가 읽어온 좋은 투자책에서 말한 것처럼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알기 위해서 정말 자세하게 검토하려고 노력했다(물론, 경험과 실력의 부족으로 그 검토의 방향이 날카롭지 못하고 주요한 포인트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 고민이 투자심사보고서에 오롯이 잘 담기기 바랐다.
투자검토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은 매번 다르지만, 시간과 여력이 충분하다고 가정할 때 나는 많은 자료를 요청하고 많은 질문을 던졌다. 적어도 받은 자료와 받은 답변은 모두 보았고 의사결정에 참고했다. 그럼에도 내가 검토한 기업의 대표님 중 일부가 힘들다는 혹은 피로하다는 느낌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칠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투자유치를 받을 때 투자유치에 몰두하라는 이야기가 많지만, 요새 투자유치가 쉽지 않은 환경이고 투자유치 기간이 반년 이상 길게 걸리는 경우도 많기에 자신의 사업을 잠시 미뤄둔 채 투자유치만 신경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현업을 병행하며 투자자 대응을 하는 대표님의 피로함을 이해한다.
또한, 어느 대표님이 내게 이야기해 주었듯이 이제 사업을 발전시키는 스타트업으로서 모든 사실을 알 수도, 또 증명할 수도 없기에 알 수 있는 70%에 집중하고 여건상 알기 어려운 30%는 대표에 대한 믿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아주 합리적인 말씀이셨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는 마윈에 대한 투자 결정을 몇 시간 만에 했다고 하지 않나.
그럼에도 내 본래 습성인 꼼꼼함을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렵고, 보지 않은 30%에 대해 믿어주려면 대표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한다. 그러려면 그것이 자료요청이든, 미팅이든, 식사이든 대표님의 시간을 뺏을 수밖에 없다.
이런 글과 고민이 무색하게 사실 각 투자검토 건은 회사의 투자유치 상황(투자자가 붐비는지 여부), 투자자의 상황(펀드 소진 이슈 등) 등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기에 모든 요소를 동일한 시간을, 동일한 정도로 검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내가 투자검토를 한다면 '이런 것들을 다 보고 결정해야지'라는 최소한의 기준선을 마련해두고 싶다. 그 기준선을 어떤 요소들과 시간들로 채울 것인지에 대해 사실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아는 방법에 충실하여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기업을 알아보려고 노력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으로 시간을 좀 더 줄이며 기존보다 좀 더 단축된 시간에 확신을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워런 버핏 - 정확하게 틀리는 것보다 대충이라도 맞추는 것이 낫다
케인스 - 사실이 변하면 나는 내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도 그러합니까?
'대충 맞추는 것'과 '사실수집과 판단' 사이에서 결국 경험과 노력을 통해 나만의 투자검토 방법을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