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한 답부터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스타트업 대표에게 청빈함은 필요하다. 정확하게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대표는 청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청빈함은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함'을 의미한다. 가난함까지는 현실에 맞지 않기에 이를 소박한 것으로 대체해서 보자.
사실 청빈함은 공적인 일을 하는 공무원,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덕목으로 보인다. 스타트업 대표의 목적이 무엇에 있든, 결국 사업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들은 큰돈을 벌게 된다. 그렇기에 청빈함이라는 것이 모순되어 보인다.
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투자를 받으려는 대표는 청빈해야 한다. 그들은 사업의 더 빠른 성장, 그들이 세운 가설의 더 빠른 검증을 위해서 경영진인 자신의 신용과 사업에 대한 믿음을 담보로 외부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받은 돈을 사업의 성장과 가설의 검증이 아닌 다른 곳(그것의 목적이 사업과 관련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에 쓰는 것은 투자자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행동으로 향후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자신이 노력한 만큼, 필요한 만큼 복리후생을 가져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사업의 본질을 벗어난 곳에 투자금을 쓰는 것은 청빈함을 벗어난다. 무릇 대표는 사업의 성공을 통해서(하다못해 지분 가치의 상승을 통해) 향후 자신이 보유한 지분(equity)을 통해서 경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한다. 그전까지는 사업의 성공에 전념해야 한다.
만약 사업을 통해 경제적인 성과를 얻고 싶고, 이를 사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틈틈이 얻어가고 싶다면 외부투자를 유치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기업의 대표가 좋은 차를 법인 명의로 운행하고, 많은 월급을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해관계자가 대표 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자를 유치한, 유치하려고 하는 대표의 청빈함이라는 이야기가 어쩌면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어만 다를 뿐, 워런 버핏을 포함한 수많은 투자의 거장들은 대표에 대한 신뢰를 무척 강조했다. 그만큼 대표가 외부에 신뢰의 이미지를 주고, 이를 유지해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나 또한 투자검토를 할 때 대표의 청빈함을 하나의 주요한 요소로 생각해서 보려고 한다. 그 정도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봐야겠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투자 결정을 할 때 많이 반영하려고 한다.
자본주의의 요체인 기업, 그중에서도 첨병인 스타트업에 조선시대 선비정신에서 강조할 것 같은 청빈함이라는 단어가 모순적으로 느껴져도, 외부투자를 받으려고 하는 스타트업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