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닮아간다는 것
어떤 사람을 오래 알고 가까이 지내다 보면 점점 서로 동화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가끔씩 직장 동료나 친구의 말투를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흠칫 놀란다.
남편을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다 보니 가끔 내가 그가 된 것 같은 순간들이 생긴다. 생각이나 행동, 말, 식성, 취향 같은 것들 말이다.
파란색을 좋아한다던지, 게으름을 즐긴다던지, 노는 시간만이 가장 가치 있다는 생각이라던지, 햇볕을 좋아한다던지, 자연을 오랫동안 응시한다던지 하는 것들은 다 남편에게서 온 것들이다.
남편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중 하나는 조기 은퇴이다. 내가 남편의 꿈을 가로채 대신 이뤄버린 셈이다.
그렇다. 사실 그것은 남편의 꿈이었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우리는 늦어도 42살 정도에 함께 은퇴를 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나만 좀 더 일찍 퇴직했고 그의 조기 은퇴는 불투명해졌지만 말이다. (심지어 이것 또한 내 계획은 아니고 남편의 플랜 B이다.)
나는 성실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내 천성은 아무래도 게으른 편인걸 보면 아마도 엄마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엄마가 ‘성실’이나 ‘근면’과 같은 가치에 대해 많이 주입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우리 때는 고등학교 때 6시간 자면 OO대학교 가고, 5시간 자면 ㅁㅁ대학교 가고, 4시간 자면 **대학교 간다는 얘기가 있었어.”과 같은 말들. 그래서 사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 이를테면 중학교 때 첫차 버스를 놓쳐본 적도 없고, 고등학교 땐 무려 아침잠을 줄여가며 아침밥도 먹었다. 기숙사에서 정해진 시간에 아침밥을 먹는 사람은 아마 1/3도 안됐을 것이다.
남편도 나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나의 영향으로 지금 성실해져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일하기 싫어하는데, 우리 둘 중 가장 많이 일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설령 그게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