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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Jul 11. 2020

내게 어울리는 집을 찾아서

요즘 어딜 가든 집이 이슈다. 정확히는 부동산. 맛집 커뮤니티든, 여행 커뮤니티든, 어딜 가도 부동산 얘기가 나오니 정말 핫하다 싶다.

별로 사람 만날 일 없는 나지만 친구들에게 들어보면 모임에서도 예전엔 연봉 얘기를 했다면 요새는 부동산 얘기를 한단다.
나도 집 있는 죄인인지라 내가 이런 말을 꺼내긴 얄미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에서 들리니 나도 한 번쯤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설하고, 내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부동산이 아니라 집 이야기이다.




나는 집을 참 좋아한다. 워낙에 열악한 집에 많이 살아봐서 집에 대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집순이로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나 같은 집순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치 않다. 오히려 시간이 모자란다. 집에서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짐 정리도 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넷플릭스도 보고, 일도 한다. 집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가고도 3일 정도는 거뜬하므로 코로나 시대에 참 적합한 인간형이다.

옷 좋아하는 사람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는 만큼, 나는 집에 관심이 많다. 백화점 아이쇼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아파트나 주택지 산책을 참 좋아한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남편의 취향=내 취향으로 수렴하고 있으므로 우리 커플은 이리저리 산책하며 다름 아닌 집을 평가질 하길 즐긴다.
남들은 쇼핑몰에 갈 때, 우리는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다. (물론 아이쇼핑이다.)


아파트를 산책할 때에는,

동간격이 널찍하니 좋다, 혹은 좁아서 답답하다.
외장에 대리석을 많이 써서 고급스럽다, 혹은 너무 아껴서 없어 보인다.
이 단지는 인도의 동선이 비효율적이다.
이 부분엔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
여기 정도면 1층도 사생활 보호가 되겠다.
조경에 수종이 다양하다.
쓰레기장이 길에서 너무 잘 보인다.
신축 아파트는 난간이 저렇게 생겼구나.
요즘은 저런 색 조명을 다는구나.
아파트 현관이 숨어 있어 답답하다.


주택지를 산책할 때에는,

이 집은 꼭 지중해 양식이다. 이 집은 꼭 하와이에 있는 집 같다. 세계의 건축 양식이 모여있네.
요즘은 담장을 못 만드는 동네가 있다더니 여기인가 보다.
이런 집은 사생할 보호가 안 되겠네.
이 정도면 관리하기 수월하겠다.
잔디가 너무 무섭게 자랐네. 우리에게 주택이 생긴다면 마당은 시멘트로 덮어야겠다.
나도 정원에서 바비큐 하고 싶다.
이 동네는 전원주택지 치고 상권도 가깝겠다.
이 빈 땅에는 어떤 집이 들어오려나.
우리라면 어떤 집에 살까.


시시덕거리면서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며 다닌다.
대화는 어떤 집에 살고 싶고, 어떤 환경이 우리에게 맞는 환경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요즘 드는 몇 가지 생각은 이렇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주거문화는 상당히 평등하다.


나혼자 산다에 나오는 연예인 집이나, 땅콩 항공으로 이슈가 된 재벌 집이나, 경기도에 사는 친구 집이나, 지방 도시에 사는 우리 집이나, 일단 아파트라면 집 내부는 큰 차이가 없다.


물론 평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국평’이란 말이 있듯이 30평대이면 인테리어는 꾸미기 나름이지 큰 틀은 거기서 거기이다.


할리우드 연예인 집이나, 뉴욕 5번가의 고급 빌라를 보면 넘사벽이 느껴지면서 나는 생에 저런 집에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에서는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곳에 사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뉴욕이라면, 방 한 칸짜리 스튜디오보다는 5번가의 널찍한 고급 빌라가 누구에게라도 좋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강남의 롯데캐슬이나 경기도 수지의 LH나 내내 25평 혹은 34평 아파트다.

지금 강남이란 입지를 어디에 비교하냐는 반문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 또한 서울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살 때는 계속 중심부에 살기를 원했다. 빌라였지만 삼성동, 역삼동, 성수동에 살았고, 남편과의 첫 아파트 생활은 서초구에서 했다.

나는 어쨌거나 디자이너였으므로 꼭 서울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디자이너들이 좋아하는 모든 좋은 것들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전시관, 새로운 샵, 핫한 카페와 식당, 멋진 건축물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서울에 살 때는 항상 갈증이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하늘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을 산책하고 싶고 잔디밭에 앉아서 놀고 싶고 교외로 슬쩍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날은 남들도 다 나가고 싶으므로 가까운 한강공원에라도 가려면 한 시간씩 도로에 시간을 버려야 했다. 막상 도착하면 주차할 장소도, 돗자리를 깔 장소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빡빡했다. 동네 산책 역시 빽빽한 차들 사이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항상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해야 했다. 교외로 떠나는 것은 큰 맘을 먹어야만 가능했다. 힘들게 두물머리까지 도착해도 여전히 핫도그 집에는 사람들이 줄을 100미터씩 서 있다.

그런데 대전으로 내려와 지금 집에 살다 보니 연봉 10억을 준대도 서울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의 만족도는 이곳에서 훨씬 높아진 것이다.

항상 자연이 가까이 있어 집안에서는 산이 보이고, 집 앞을 흐르는 하천에서는 아이들이 물장구를 친다. 또한 하나로마트나 동네 병원은 도보 10분 안쪽으로 갈 수 있다. 지어진지 6~7년쯤 된 준신축 아파트이므로 냉난방이나 조경, 주차시설 등 각종 주거 수준이 높다.

차가 막히지 않아 시내라면 어디든 30분 내로 이동 가능하고, 주말에 근교로 나가도 차도 안 막힐뿐더러 도착하면 붐비는 인파 없이 한적하다.

나에게는 자연과 가깝고 인구밀도가 낮은 이런 환경이 맞는 것임을 이곳으로 이주 후에야 절절히 깨닫는 중이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뻥 뚫린 국도를 타고 15분만 달려가면 이렇게나 한적하고 아름다운 금강을 만날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집을 선택할 때 취향을 깨닫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딱 알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가끔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 체형은 고려치 않고 유행만 좇는다고 멋쟁이가 되는 게 아니듯 집도 그렇다. 한국사회에서는 때 되면 대학가야 하고, 결혼해야 하고, 집을 사야 하는 등 남들 기준에 맞춰 사는 게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자신의 취향을 모른 채로 살아가기도 쉬운 것 같다.

나 역시 차가 막혀 스트레스받을 때도 남들도 다 막히니까 참고, 사람이 붐벼 기가 쪽 빨려도 남들도 다 똑같으니 넘기며 살았다. 그런데 나는 유난히 차 막히는 것을 싫어하고 인파가 붐비는 곳에서 유난히 기가 빨리는 편이었던 것이다. 남들도 다 똑같이 사니 그러려니 하며 넘긴 것들이 사실은 내 행복을 갉아먹는 요소들이었다. (물론 내가 남들보다 더 무딘 부분도 있다.)

지금 대전에서의 이 집과 삶에 만족하게 되자 친구들에게 시골로 오란 오지랖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사실은 씨알도 안 먹힌다. 지금 서울 집에서의 직장, 인프라,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옮기는 것은 실로 말이 안 된다. 나 역시 남편의 이직이라는 사건이 아니었다면 지방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어떤 플랜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도와줄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서울과 수도권 집중이 너무 심하다. 국민의 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고, 많은 사람이 좋든 싫든 수도권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걸 어딘가로 분산시키려면 구미가 솔깃 당길만한 당근이 필요해 보인다. 내 남편의 경우엔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에 맞먹는 혜택들 말이다. 지방에서는 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던지, 이주민 누구에게나 얼마간 상당한 지원금이 나온다던지, 각종 세금을 감면해준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조금 파격적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수도권에서 전라도 OO시로 이주하면 연간 이천만 원을 지원해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얼토당토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관성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그것을 깰 만큼 파격적이지 않고서는 사람들은 잘 옮기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기본적으로 먹고 살 걱정이 없어지면 자신에게 더 맞는 환경을 찾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기존 원주민들과의 형평성의 문제가 있지 않냐 싶을 텐데,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소비자가 늘어나므로 이득이고, 점점 상권이 활성화되면 지역이 발전하게 되므로 원주민들도 이득이다. 또한 수도권의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유입되면 지방은 정체되어 있을 때보다 발전할 수밖에 없다.




꼭 도심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한 번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집을 경험해보면 대다수는 상당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아파트는 꽤나 평등해서 같은 연식이면 서울 부자 동네 건 지방 소도시이건 집 자체는 대단한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집과 주거 환경에 대해 나처럼 관점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거 환경에 만족하면 집에 대한 불필요한 욕심이 줄어든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 서울과 수도권 집중이 조금 완화되면 부동산에 관한 상당히 많은 문제도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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