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백수가 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거의 10년을 쉬지 않고 일했던 1년 전의 나는 이렇게 긴 휴가가 생기는 것이 아주 어색했다. 특별히 기간을 정해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개월 충분히 쉬고 나면 1년째에는 '뭔가'를 하고 있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발에 차이는 매일과 같은 오늘이 1주년이라니. 딱히 계획한 것이 없으므로 이루지 못했다고 실망할 것도 없지만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다.
그래도 오늘을 조금 특별한 날로 기억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지난 1년을 돌아보도록 하자.
얻은 것들
1. 어쩌다 다이어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30대 초반 이후로 쭈욱 듬직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1인이다. 그 이유는 음식인데, 배고픔을 잘 못 참는 데다가, 맛있는 것이나 새로운 것을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심지어 남편도 그러하니 쿵짝은 잘 맞지만 우리는 통통할 수밖에 없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내게 예외 없이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안 찐다'라고 말하곤 했다. 즉, 일정 수준 살이 쪄 있다는 뜻이다. 백수가 된 이후로도 여전히 잘 먹는다. SNS에는 거의 음식 사진만 올리고 있고, 앵겔 지수는 최고조이며, 어제도 당연하다시피 야식을 먹었다.
그런데 서너 달 전부터 샤워할 때 보니 뭔가 뱃살이 조금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이 찍은 내 사진에서도 팔뚝이 조금 얇아진 것 같았다. 주 3회씩 아침반 요가를 꾸준히 나가고 있는데, 함께 하는 아주머니들도 내가 살이 빠졌단다. 여자들이 으레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몇 번 듣고 보니 정말인가 보다. 집에 체중계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지난주 건강검진을 다녀와 드디어 수치로도 확인이 됐다. 살이 빠졌다.
이게 웬일? 노력한 게 없는데 살이 빠지다니... 참 기특하다.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삼시세끼 먹는 밥이 이유인 것 같다. 백수가 되고 나서는 거의 집밥을 먹고 있다. 특별히 건강식을 챙기는 것도 아니고 평범하다.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므로 나 또는 남편이 직접 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 배달도 받고, 만두나 동그랑땡과 같은 각종 냉동식품류도 활용한다. 당연히 배달이나 식당 포장 음식도 종종 먹는다.
이 정도로만이라도 '집밥'을 먹으니 살이 빠지는 것 같다. 집에서 한 음식들이야 당연하게도 외부 음식보다 덜 짜고 덜 기름지다. 그리고 꽈리고추라던지 가지와 같은 제철 채소 따위는 매우 싸서 손쉽게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므로 식이섬유도 더 많이 먹게 된다. 무엇보다 같은 음식이라도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포장해서 집에서 먹는 것이 살이 빠지는 데에 일조하는 중요한 이유는 '1인분의 양'인 것 같다. 식당에서 먹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무리해서 1인분을 다 먹게 되는 때가 많다. 돈가스라던지 부대찌개 같은 것들은 사실 '1인분'의 나트륨이나 지방 함량이 어마어마하다. 집에서 먹을 땐 2인분을 둘이 먹으면 웬만하면 남긴다. (남으면 내일 또 먹으면 되니까.) 혹은 1인분을 둘이 나눠 먹어도 다른 반찬들을 조금씩 곁들이면 적당하다.
2. 건강
이건 노력해서 얻은 것이므로 1번보다는 자랑할 만하다. 튼튼해 보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나는 허우대가 허약한 편이다. 특히 관절이 안 좋은 데다가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직종이다 보니 어깨가 안 좋았다. 아침에 기지개를 켤 때마다(사실은 그저 누워 있는 자세를 바꾸기만 해도) 어깨에서 뚜둑 소리가 났다.
작년 11월에 지금 집으로 이사 온 후부터 집 앞의 요가원에 다니고 있는데, 요가라는 게 원래 내가 즐겨하던 필라테스와는 아주 다른 운동인 것이다. 엎드려하는 동작이 많다 보니 어깨가 많이 강화되고 있다. 요즘은 아침에 기지개를 켤 때 어깨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안 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나만 아는 힘에 집중하는 동작이 많다 보니 손목과 팔꿈치 등 다른 관절도 많이 튼튼해진 것 같다. 승모근 좌우 비대칭도 심했고 오른쪽 날개뼈 쪽 통증도 있었는데, 일을 쉬고 6개월 정도까지는 계속 아프더니, 최근엔 통증이 거의 줄었다.
3. 남편의 건강과 행복
남편도 살이 빠졌다. 주말부부 시절 남편은 평일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다가 밤이 되어서야 폭식을 하는 패턴이었다. 내가 대전에 오면서 남편도 나와 함께 규칙적으로 잘 먹게 되었다. 하루에 먹는 양은 예전보다 더 많아졌는데 오히려 살은 빠졌다. 규칙적으로 먹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게다가 속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던 증상도 사라졌다. 밤늦게 먹고 자길 반복하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이 생긴 것이다. 몇 달 간은 밤에 잘 때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해서 상체를 베개로 받혀 조금 세운 채로 자기도 했다. 그러다 현재는 어느새 증상이 사라졌다. 숨을 잘 쉰다.
무엇보다도 남편이 행복해한다. 부부가 함께 매일 맛있는 것을 먹고, 저녁때는 산책하고, 아침마다 베란다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주말이면 교외로 훌쩍 나갔다 오는 삶을 살고 있다. 예전에는 후줄근하던 대전이 내가 오자 살기 좋은 도시로 변했단다. 나 역시 대전이 정말 살기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난 1년 간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말하고 있다.
4. 마음의 여유
삶에 대한 중압감이 너무 커서였을까,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의 말로는 요즘 내가 나답지 않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요즘 자연의 아름다움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자연이 언제부터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거슬러 올라가 보니 작년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고용복지센터에 혼자 다녀왔을 때부터이다. 그때 아주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초가을 날씨가 좋아 오는 길에 일부러 더 먼 정거장에 내려서 갑천을 건너고 수변공원과 연못을 지나왔다. 파란 하늘과 구름, 반짝이는 물빛, 무성한 풀, 노란색 꽃, 분수와 같은 것들이 마치 흑백영화만 보다 컬러영화를 처음 본 것처럼 눈부시게 보였다. 마치 스위치가 탁 켜진 듯, 백수가 되고서야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생겨났고,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자연이 이제야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5. 가족과의 관계
하나뿐인 동생이지만 사이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내가 고등학생, 동생이 중학생 때부터 지금껏 따로 살아왔으니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도 있고, 그동안 살아온 환경이 달랐던 탓도 있다. 어렸을 적의 내가 좀 못됐던 탓도, 가정교육이 동생에게 불평등했던 탓도 있다. 어쨌거나 성인이 된 우리는 너무 많이 달라서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다.
천성이 다정한 편인 동생은, 내게 아주 다양하고 많은 의견을 구한다. 반면 나는 무뚝뚝하고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편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물어보긴 해도 의견은 그리 물어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동생이 뭔가를 물어오면 너무 힘들었다. A를 물어와 고심 끝에 대답한대도 곧바로 A' 혹은 B를 물어보니, 나는 항상 '과연 그녀가 원하는 정답은 무엇일까...' 하는 뫼비우스의 띠 걸려드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더니 비로소 동생이 원하던 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 보였다. 동생이 뭔가 물어보면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도 항상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하는 대답이 돌아와 힘들었는데, 사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딱히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해.'보다는 그저 '그게 너의 고민이구나.'라는 대답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오히려 동생은 고민거리를 스스로 너무나 빠르게 해결하고 있었다.
잃은 것들
1. 돈과 커리어
충분히 예상했으므로 딱히 아쉬울 것은 없지만, 역시 돈과 커리어는 퇴보이다. 다행스럽게도 6개월 동안은 실업급여가 나왔고, 두 달여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으므로 스스로 생존할 만큼은 돈을 벌었다. 그다지 돈들 일 없는 생활 패턴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행운이 깃들기도 했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놀려면 진짜 실컷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에너지를 회복하고 더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퇴사라는 큰 도박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파트타임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회사일에 매여있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삶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일을 하려면 열심히 일하고, 놀려면 열심히 노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잘 마무리하고 서둘러 계약을 종료했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지난 10년간 해온 일을 등지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가까운 필드에 비벼볼 것인지. 이 고민은 다음 1년에 남겨보기로 한다.
2. 친구들
종종 만나던 친구들을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잃은 부분인 것 같다. 서울-대전의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더 멀어졌다. 종종 남편의 출장을 따라 내가 서울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남편의 출장이 뚝 끊겨버렸다. 대전서 한번 보자고 해도, 대중교통 타기가 애매하니 자차가 없는 친구들은 보기 어렵다. 한 달에 한 번쯤 보던 친구들은 1년 간 두 번쯤 본 것 같다. 두세 달에 한 번쯤 보던 친구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별일 없이 만나 별일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코알라도 되고 하던 시절이 그립다.
대전에서 친구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무엇보다 백수에게 인관관계의 고민은 나 같은 백수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대전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몇 명 있긴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애 키우기에 바쁘다. 문화센터에서 만나는 또래 친구들 역시 애 키우기 바쁜 틈을 쪼개 나오므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다. 요가원에서 만나는 분들은 우리 엄마뻘 아주머니들이다. 처지가 비슷해야 그나마 보잘것없는 고민이라도 나눌 텐데, 나와 공감해줄 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사택 친구라던지, 도예 선생님 같은 사람들 말이다. 지금의 내 삶과 조금씩이라도 닮은 그들의 삶이 내게 너무 행운처럼 여겨진다. 예전엔 한 명의 인연이 이렇게 소중한지 모르고 살았는데, 내가 만났던 모든 인연들에게 좀 더 잘할걸... 조금 후회가 된다.
3. 건강
올해 초에 집안에서 현관으로 방방 뛰어나가다가 마치 만화 속 주인공이 바나나를 밟은 것처럼 발라당 넘어져버렸다. 덕분에 얻은 것은 새끼손가락과 꼬리뼈 부상. 몇 주 동안 새끼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살았고, 꼬리뼈는 뭐 어떻게 할 수도 없으므로 얌전히 있을 수밖에.
또한 며칠 전에는 다용도실에서 허리를 숙여 쓰레기를 정리하고 일어서다가, 나도 모르는 새 바람에 열린 창문에 엄청나게 세게 머리를 부딪혔다. 얼마나 셌는지, 안방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집안이 쿵 하고 흔들렸다며 뛰쳐나왔다.
아무리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들 한 순간의 실수로 그동안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백수 1주년인 오늘도 별다른 바 없는 평범한 백수의 하루이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이 글을 쓰다가, 오늘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함께 아점쯤 되는 밥을 차려 먹었고, 사마귀 치료를 위해 예정대로 병원에 한 시간 정도 다녀왔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 곧 퇴근하는 남편과 함께 가까운 카페에 잠시 다녀올 예정이다.
누군가 '오늘 백수 된 지 1주년인데 어떻게 보냈어?'라고 물어보면 지극히 평범해서 지루할 지경이지만 오늘도 꽉 차있고 행복한 느낌이 든다. 1년을 돌아봐도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많은 것 같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지금까지는 잘 보낸 것 같다.
지난 1년을 잘 보냈으니 앞으로의 1년에는 한 가지 계획만 덧붙여보기로 한다. 다음에 돌아오는 2주년에는 '뭔가'를 찾아 하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