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남미 여행을 계획했을 때 혼자는 절대 못 간다고 생각을 했고, 당연히 누군가와 같이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 친구와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떠나기 2주 전, 갑자기 친구가 연락받지 않았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친구는 출발 1주일 전에 못 간다고 했다. 연락을 받지 않았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혼자 가기는 두려웠기에 며칠을 고민했다. 퇴사는 이미 해버렸고, 시간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갈까', '말까' 수도 없이 고민하다가 출국 당일, 혼자 인천공항을 향했다.
계획은 시작하기도 전에 틀어졌고, 그동안 같이 세웠던 대략적인 일정표와 가고 싶은 곳을 표시해 두었던 자료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늘 여행하기 전,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했다. 어디를 갈지 상상만 해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나 홀로 남미 여행은 계획하는 것부터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대략적인 계획만 세운 채, 그 이후로는 흘러가는 대로 떠났다.
볼리비아 비자를 한국에서 미리 발급받은 터라, 받은 날짜로부터 90일 이내 입국해야 했기에 그 기간에 맞추어 멕시코부터 내려오다가 파나마에서 볼리비아로 입국했더니 루트가 아예 꼬여버렸다. 꼬여버린 루트는 볼리비아에서도 똑같았다. 30일 무비자이기 때문에 그 안에 둘러봐야 했다. (물론 일정 금액을 내고 90일까지 연장이 가능하지만, 굳이 원하지 않았다)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비루비루 공항에 도착한 나는, 우유니 사막을 보러 한 번 다녀오고, 이후엔 수크레에 약 한 달간 머물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볼리비아의 숨겨진',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도시' 중 수크레가 꼽혔고, 대부분 좋았다는 평이 많았으니 당연히 나에게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안전하다고 하는 동네였지만 너무도 심심했다. 주변 관광지도 꽤나 있었지만 딱히 끌리는 곳이 없어 오래 머무를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러다가 행정상 수도인 라파즈로 이동했다.
볼리비아 코파카바나 호수
라파즈로 이동한 이유는, '남미사랑' 단톡방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 분의 프로필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라파즈에서 약 4시간 떨어져 있는 코파카바나 호수였다. 다음 나라는 아르헨티나였기 때문에 밑으로 내려가야 했지만 그 사진 한 장에 매료되어 다시 위로, 라파즈로 향했다. 코파카바나 호수 1박 2일, 라파즈 데스 로드 투어, 마녀 시장 등 많은 볼거리를 구경하고, 다음 행선지인 코차밤바로 이동했다.
남미에서 브라질 리우 예수 보다 더 큰 볼리비아 코차밤바 예수상
코차밤바로 이동한 이유는 단순했다. 파나마 주짓수 체육관에서 관장님과 대화하던 중, 다음 여행지로 볼리비아에 간다고 하니, 본인의 제자가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체육관을 하고 있다고 위치와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알려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코차밤바에 갈 생각이 없어서 그저 흘려 들었지만, 어느샌가 나는 코차밤바에 와있었다.
그리고 라파즈에서 데스 로드 투어를 동행했던 한국인 형이 있었다. 그 형과 라파즈에서 서로 각자 계획하던 곳으로 이동했다가 일정이 비슷하여 아르헨티나 살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살타,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구아수 폭포 그리고 전혀 계획에 없던 브라질 리우까지 어쩌다 보니 동행하게 되었다.
이렇듯 나의 여행은 무계획에, 흘러가는 대로 흘렀지만, 때론 누군가와 함께, 때론 혼자서 많은 곳을 보고, 느끼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