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 여행을 가기 전부터 들떠 있었다. 남편과 나, 둘이 가는 마지막 여행이니 충분히 즐기고 야무지게 놀다 올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어딘가 달랐다. 아니, 어쩌면 나만 모르는 채 이미 셋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승무원이 몇 주차임을 물으며 나의 컨디션을 세심히 체크했고, 교통 약자로 우대를 받아 기다림 없이 비행기를 탑승했다. 나조차 깨닫지 못했던 뱃속 아기의 존재가 바깥 세상에서는 이미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이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어린 자녀와 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가 아기를 안는 동안 기내식을 빠르게 먹는 엄마 그리고 못먹는 아빠를 대신해 먹여주는 모습
이륙할 때 귀가 아파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 그리고 난처해하며 달래는 부모의 모습
어린 아이들에게 싱긋 웃으며 젤리 간식을 건네 주는 승무원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이 여행의 시작부터 낯설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선택한 태교 여행지는 오키나와였다. 두 시간 거리의 가까운 나라이자 먹방여행을 즐기는 우리에게 다양한 일본 음식은 잘맞았다. 그래서 리조트가 많이 모여 있는 부근보다 맛집도 많고 구경하기에 좋은 중심부의 오키나와 국제거리에 비즈니스 숙소를 잡았다. 짐을 얼른 풀고 남편과 거리 자체가 관광지인 국제거리를 돌아다니며 기념품, 먹거리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몰이 지고 캄캄한 저녁이 되면 더 활기를 띠는 거리에는 식당, 이자카야를 방문하라는 호객 청년들이 꽤 보였다. 전단지를 나눠주며 관광객들에게 인사하는데 배가 불룩 나온 나를 보며 "아카짱, 앗 스미마셍" 하는 것이다. 미처 나도 인식하지 못했다가, 어쩔 줄 몰라하는 일본인 특유의 모습에 아기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낸 재밌는 헤프닝이었다.
여행을 가면, 특히나 도심 여행에서 뚜벅이로 만보 걷기는 거뜬하다. 우리 부부도 만 오천보, 만 이천 보를 걸으며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숙소에 돌아오면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부었다. 손도 퉁퉁 부어 헐렁하던 결혼반지가 꽉 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많이 걷고 많이 먹어도 이렇게까지 부은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신나서 걷는 엄마에게 아가는 무리하지 말라고 말을 걸었다. 나의 신체 변화가 내안에 새로운 생명이 있음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보통의 체력이라면 하루에 2~3 군데의 관광지를 구경할텐데, 확실히 앞선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의 마지막 날은 리조트로 이동하여 푹 쉬기로 했다. 하지만 본래 리조트에서 더 바쁜 법 아닌가. 숙소 체크인을 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은 채 한국에서부터 미리 준비한 소품들을 꺼내 만삭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스타일대로, 남편과 나 그리고 아기가 한 프레임에 담았다. 만삭사진 속 우리의 모습은 이제 온전히 '부부'가 아닌, 한 아이의 '부모'로서의 첫 얼굴이었다.
'만삭사진 찍기'라는 미션을 수행하고, 리조트 수영장을 찾았다. 어린 아기와 부모들이 많았다. 아빠가 밀어주는 튜브 안에서 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썬베드에 누워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미래의 우리 셋의 모습을 상상했다.
둘이서 떠난 마지막 여행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뱃속의 작은 생명과 함께한 셋의 첫 여행이었다. 공항에서, 비행기 안에서, 쇼핑몰에서, 관광지에서, 리조트에서, 어느 곳에서나 아이가 보일 때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의 주제로 대화를 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신기하게도 눈길이 가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과 웃음, 고단한 부모의 얼굴과 초인적임 힘이 보이는 그 뒷모습. 상반된 것들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두려움이 일렁였지만 우리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점점 설렘의 감정이 커졌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아이와 대화하고 상상했다. 시간이 흘러 어쩌면 이 여행의 세세한 기억들은 희미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오키나와 태교여행에서 시작된 '셋'의 이야기는 이 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찾을 날을 꿈꾼다. 그때 우리는 '아카짱'이라 불리던 그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겠지.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곧 만날 우리의 아기에게 '평생의 한 팀'이 될 것임을 다짐하며, 진정한 '부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