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태어나는 순간

by 조아서

내 이름은 '영자'가 될 뻔했다. 엄마는 시부모님이 지어주신 '영자'라는 이름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옥편을 뒤져 직접 딸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소중한 첫째 딸이자 첫 손녀가 아름답고 귀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학창시절부터 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흔하지도,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았다. 오래 전, 시부모님의 의견에 조심스레 반대를 들고 딸의 평생을 먼저 생각해 준 엄마가 고맙다. 엄마의 고민과 사랑이 담긴 내 이름처럼, 나도 아이에게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기 성별을 알았을 때부터 이름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만나는 지인, 친구들마다 자녀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물었다. 부모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거나, 작명소에 맡겼거나, 부모의 바람을 담은 뜻이거나, 각양각색이었다.

SNS 피드에는 'AI로 아기 이름을 짓는 법'을 소개하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예비 부모가 많아 조회수가 높았다. 나도 피드를 따라 프롬포트에 남편과 나의 사주를 입력해, 우리 가족에게 조화로운 아기의 이름을 여러 개 추천 받았다. AI의 분석력에 감탄했고, 추천한 이름들을 유력한 아기 이름으로 여기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른 AI로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분석 결과는 제각각이었지만, 추천된 이름들은 묘하게 겹쳤다. 내 질문을 바탕으로 한 맞춘 결과일 거라 기대했지만, 요새 유행하는 여자아이 이름들에 그쳤다. AI에 대한 신뢰는 금세 무너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민은 계속되었고 출산일이 다가왔다. 세상에 온 아기가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결국 제왕절개 실밥도 풀기 전, 출산 다음 날 곧바로 작명소에 아기 이름을 맡겼다. 남편과 나의 조건은 명확했다. 요즘 유행하는 이름은 아니었으면 하는 것, 중성적인 이름이었으면 하는 것, 남편의 성이 강해서 가운데 이름은 받침이 없었으면 하는 것. 세 가지였다.


이틀 뒤, 작명소로부터 5개의 이름을 받았다. 그중 두 개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하나의 이름 중 가운데 한자의 뜻이 아버지였다. 사람들이 굳이 한자 뜻까지 깊이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공경하라'는 의미가 딸 이름에 담기는 건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남녀 평등을 외치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한자 뜻은 아무래도 아니었다. 마침내 이름을 결정하고, 다음 날 남편이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부, 모, 그 아래에 우리 딸의 이름 세 글자와 주민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길고 치열했던 이름 고민 끝에, 우리 아이가 이제야 진짜 세상에 태어났음을 실감했다. 비로소 아이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수십 년 전,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행복을 빌었듯, 이제 나도 우리 딸의 이름을 부르며 소중한 앞날을 함께하고 싶다. 이름처럼, 우리 딸이 바른 길을 걷으며 맑고 고운 웃음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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