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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절

by 박은영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살아 있는 자가 중요한 세상입니다


어쨌든 살아보겠다고

과거에 지난한 과거를 덧씌웁니다


그렇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서

차마 믿을 수 없다 해도

없었던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 없는 자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물을 수 없을까요


그 사람은 자꾸만 몰랐다고만 하고


이제 어디에 주저앉아 울어야 할까요

앉을 곳은 없습니다 있어도 멈추면 안 된다고

계단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릅니다


우리가 손을 놓쳤을 때

떠밀린 당신은 꼭대기로 갔고


어느덧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나, 내가 말이야


손을 놓았던 것도 같고

당신을 떠밀었던 것도 같고


환한 빛으로 가득 찬 절망

그 순간을 함께 잃는다면


그게 바로

당신의 대답이라고


아,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살아있는 자가 중요한 세상입니다

이미 떠난 자보다



추신

몰락을 택할 거야.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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