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Schubert "Erlköng", Op. 1, D. 328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도 슈베르트의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오늘 함께 들어볼 작품은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Erlkönig)>입니다. 이 곡은 1815년, 슈베르트가 18세의 나이에 작곡한 가곡으로 괴테의 시에 음악을 붙인 작품입니다. 드라마틱한 서사와 정교한 피아노 반주가 돋보이는 이 곡은 1821년 슈베르트의 작품 번호 1번으로 출판되었고 성악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강렬합니다. 한밤중, 아버지는 병든 아들을 품에 안고 말을 타고 어둠 속을 질주합니다. 숲과 바람, 밤의 공포 속에서 아이는 마왕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왕은 다정한 말로 아이에게 다가와 함께 가자며 유혹하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아이에게 그것은 안개일 뿐,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의 그림자일 뿐이라며 안심시키려 합니다. 이성과 현실의 언어로 공포를 밀어내려는 아버지의 말과 달리 아이의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마왕의 목소리는 점점 위협적으로 변합니다. 결국 마왕은 힘으로라도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선언하고 아이는 “지금 그가 나를 붙잡고 있다”고 절규합니다. 아버지는 말을 더욱 재촉해 집에 도착하지만, 그의 팔 안에서 아이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습니다.
https://youtu.be/8nvGJJJFKYc?si=eoMS9wwk5Cvyn0pX
이 곡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가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셋잇단음은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키며 곡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긴장을 놓지 않습니다. 성악가는 화자, 아버지, 아들, 마왕이라는 네 명의 인물을 하나의 목소리로 표현해야 하며, 각 인물은 뚜렷하게 구분된 음역과 성격을 지닙니다.
화자 : 중간 음역,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어조
아버지 : 낮은 음역, 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
아들 : 높은 음역, 불안과 공포에 찬 목소리
마왕 : 부드럽고 밝은 음색, 유혹적이지만 점점 위협적으로 변하는 말투
이 네 개의 성격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충돌하며 음악은 극도의 긴장 상태로 치닫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왕>은 단순한 가곡을 넘어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극적 서사의 모델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리스트의 피아노 편곡, 베를리오즈의 오케스트라 편곡 등 수많은 편곡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브런치북에서는 피아노 듀오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니 1 piano, 4 hands 버전의 <마왕>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https://youtu.be/5xH4uKPDAEE?si=b8zvkzKyfxqc2M0c
영상의 주인공 Anderson & Roe는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피아노 듀오로 두 사람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만나 듀오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연주에 그치지 않고 편곡과 영상 연출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Anderson & Roe가 직접 편곡한 피아노 듀오 버전의 <마왕>은 한 명의 성악가가 모든 인물을 표현하던 원곡과 달리 두 연주자가 하나의 피아노를 공유하며 서사를 분담합니다. 말발굽을 연상시키는 집요한 반주는 두 사람의 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한 대의 피아노 안에서 인물 간의 대립과 공포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이 영상은 뉴욕 스타인웨이 피아노 공장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곳은 세계적인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가 장인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장소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상의 정서와 상징을 형성하는 핵심 공간이 됩니다. 목재와 금속, 울림이 공존하는 공장의 구조는 <마왕>이 지닌 밤, 질주, 불안이라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확장하며 완성된 무대가 아닌 ‘탄생의 현장’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는 음악의 원초성과 운명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영상 속 두 연주자는 같은 피아노에 밀착해 앉아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듯 연주하며 극적인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피아노 바퀴가 미끄러지고 연주자들이 의자에서 떨어질 듯 쫓아가며 연주하는 장면은 불안에 휩싸인 아이를 빨리 안전하고 따뜻한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아버지의 초조함을 연상시킵니다. 처음에는 땀처럼 보이던 액체가 점점 피처럼 짙은 색으로 변해 앤더슨의 셔츠를 적시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로의 팔은 피아노에서 뻗어 나온 현들에 뱀처럼 휘감깁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연주자는 피아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집니다.
이 장면은 괴테의 시에서 아이가 결국 피할 수 없는 존재에게 붙잡히는 결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시에 이 음악과 이야기가 연주자와 청자 모두를 집어삼키는 순간을 표현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영상에서 피아노는 더 이상 악기가 아니라 공포와 운명, 서사의 중심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원래 어두운 이야기에 끌립니다. 공포와 죽음, 설명되지 않는 위협과 피할 수 없는 결말을 다룬 서사를 여러 가지 형태로 반복해 읽으며 매혹됩니다. 어쩌면 그것이 비극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둠의 결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빠르게 달리는 말발굽처럼 쉼 없이 이어지는 음악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불안과 초조함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앞으로 나아가며 보이지 않는 위협을 애써 이성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괜찮다고, 착각일 뿐이라고, 아직 더 버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말이지요.
끝내 막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저는 문득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른이 된 나는 아이의 공포를 안개와 바람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쳐온 것은 아닐까요.
(대문그림 - Erlkönig by Johann Baptist See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