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작은 모음곡>
지난 시간 예고해 드린 대로, 포레의 '돌리 모음곡'에 이어 이번에는 프랑스 피아노 연탄곡의 또 다른 걸작, 클로드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Petite Suite)'을 함께 듣고자 합니다. 포레의 음악이 가정적이고 따뜻한 동화였다면 드뷔시의 이 초기 작품은 낭만적이면서도 세련된 프랑스 살롱의 우아함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드뷔시가 아직 난해한 인상주의 화법을 완전히 확립하기 전인 188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아름답게 들리는 선율이 특징입니다. 총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곡인 '쪽배에서(En Bateau)'는 달빛이 비치는 호수 위에서 배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듯한 풍경을 그립니다. 물결이 찰랑거리는 듯한 반주 위로 흐르는 멜로디는 베를렌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어지는 '행렬(Cortège)'은 화려하고 당당한 리듬 속에 위트가 넘치며, 세 번째 곡 '미뉴에트(Menuet)'는 옛 프랑스 귀족들의 춤곡을 드뷔시만의 감성으로 되살려 고풍스럽고 우아합니다. 마지막 곡 '발레(Ballet)'는 제목처럼 무용수들이 경쾌하게 춤을 추는 듯한 활기찬 리듬으로 곡 전체를 화려하게 마무리합니다.
자, 이제 음악만큼이나 흥미진진한 '현실의 드라마'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지난번 포레의 연인이었던 엠마 바르닥이 어떻게 '엠마 바르닥-드뷔시'가 되었는지 말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랑은 당시 파리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초특급 스캔들'이었습니다. 포레와 헤어진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던 엠마 바르닥은 1903년경 자신의 아들 라울에게 작곡 레슨을 해주던 드뷔시와 운명처럼 만납니다. 또다시 학부모와 선생님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지요. 당시 드뷔시는 이미 아내가 있었고 엠마 역시 남편과 가정이 있는 상태였죠. 하지만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고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의 도피'를 감행합니다.
이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을 위기에 처한 드뷔시의 아내 릴리가 권총 자살을 시도하는 비극적인 사건까지 벌어졌으니까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드뷔시는 평생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엠마 역시 부유했던 남편에게 이혼당하며 막대한 유산을 포기해야 했고 가족들과도 의절하게 됩니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두 사람은 1905년 딸 '슈슈(Chouchou)'를 낳았고, 1908년 정식으로 결혼하여 엠마는 드디어 '엠마 바르닥-드뷔시'가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불륜 스캔들로 파리 사교계에서 매장당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죠. 엠마는 가족에서 제외되었기에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경제적으로 힘든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뷔시는 1909년 직장암 판정을 받게 됩니다. 돈은 없고, 남편은 아프고, 세상은 손가락질하고... 현실에 지친 엠마가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 상담을 받았을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벼랑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를 떠나지 않았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드뷔시가 눈을 감을 때까지 그녀는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옛말에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말이 있지요. 엠마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19년, 드뷔시가 죽고 1년 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외동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슈슈'마저 겨우 13살의 나이에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남편을 잃고 딸마저 가슴에 묻어야 했던 엠마.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슬픔과 고독은 어쩌면 그녀가 타인에게 주었던 상처의 대가였을지도 모릅니다.
자, 그들이 남긴 '출이반이(出爾反爾 -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의 삶은 뒤로하고, 오늘 함께 들은 '작은 모음곡'에 다시 집중해 봅니다. 드뷔시 특유의 색채감과 낭만이 가득해 마치 인상파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지요. 원래는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으로 작곡되었지만, 훗날 드뷔시의 동료였던 앙리 뷔세르(Henri Büsser)가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색채를 입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오늘날에는 원곡인 피아노 버전만큼이나 이 오케스트라 버전도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고 오가는 길 안전 운전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문사진 - Boating 배에서, 에두아르 마네, 1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