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그리고 그녀의 사랑스러운 딸에게

가브리엘 포레 <돌리 모음곡>

by 에리카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돌리 모음곡(Dolly Suite, Op. 56)'은 1893년부터 1896년 사이에 작곡된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으로, 이 아름다운 선율 뒤에는 작곡가의 남다른 로맨스가 숨어 있습니다. 포레는 당시 뛰어난 소프라노인 엠마 바르닥과 깊은 연인 관계였고 그녀는 포레에게 수많은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준 여인이었습니다.


가브리엘 포레와 엠마 바르닥


사랑하는 연인의 딸이었던 어린 엘렌 바르닥, 애칭 '돌리'는 포레에게도 무척 각별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는 엠마의 집을 오가며 작고 귀여운 소녀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그 애정 어린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담아 이 곡을 완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곡 전반에는 아이를 향한 다정한 눈길과 아이의 순수함과 따뜻한 가정의 평온함이 동화처럼 녹아 있습니다.


가브리엘 포레와 엘렌 바르닥(돌리)


작품은 총 여섯 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곡마다 돌리와 관련된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첫 곡인 '자장가'는 요람을 흔드는 듯한 부드러운 리듬과 온화한 멜로디로 시작하여 포근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곡 '미아우'는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어린 돌리가 오빠인 메시외 라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미아우'라고 부르던 모습에서 따온 장난스럽고 활기찬 곡입니다. 아이들의 미숙한 발음으로 인해 가족만 알아듣는 단어들이 집집마다 있기 마련이지요. 저는 첫째 딸의 '보보비'가 떠오릅니다. '보보비'가 무슨 단어일까요? 정답은 글 마지막에 알려드릴게요. ㅎㅎ


세 번째 곡 '돌리의 정원'은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거니는 듯한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이 돋보이며, 네 번째 곡 '키티 왈츠'는 고양이가 아닌 바르닥 집안에서 기르던 강아지 '케티'가 뱅글뱅글 도는 모습을 묘사한 경쾌한 왈츠입니다. 다섯 번째 곡 '다정함'은 제목 그대로 부드럽고 서정적인 대화가 오가는 듯한 따뜻한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춤'은 돌리가 좋아하던 말 타는 동상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스페인 풍의 정열적이고 화려한 리듬으로 모음곡을 생동감 있게 마무리합니다.


'돌리 모음곡'은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딸을 향한 애정에 섬세한 감수성을 덧붙여 빚어낸 아름다운 동화 같은 작품입니다. 피아노 듀엣으로 작곡되었고 그 사랑스러운 매력 덕분에 훗날 관현악곡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Wu Han & Gilles Vonsattel

1. Berceuse / Lullaby / 자장가

2. Mi-a-ou / Mi-a-ou / 미아우 (2분 15초)

3. Le Jardin de Dolly / Dolly's Garden / 돌리의 정원 (4분 10초)

4. Kitty-Valse / Kitty Waltz / 키티 왈츠 (6분 22초)

5. Tendresse / Tenderness / 다정함 (8분 40초)

6. Le Pas espagnol / Spanish Dance / 스페인 춤 (11분 38초)




'돌리 모음곡'이 한 편의 귀여운 동화라면 현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반전 드라마입니다. 엠마 바르닥의 풀네임이 '엠마 바르닥-드뷔시'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포레와 사랑에 빠졌을 당시 그녀는 부유한 은행가 시지몽스 바르닥과 결혼한 유부녀였고 포레는 그녀 아들의 음악 선생님이었습니다. 사제지간이 아닌, 학부모와 선생님의 로맨스였던 셈이죠. 그런 그녀가 어쩌다 이후에 드뷔시의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그 드라마는 다음 주에 드뷔시의 작품과 함께 시원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아! 잊을 뻔했네요. 첫째 딸의 아기 때 단어 '보보비'는 '브로콜리'였습니다. ^^


(대문사진 - 부지발의 정원에 있는 외젠 마네와 딸, 베르트 모리조, 1881)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