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M.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by 에리카
M.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19 (Transcr. for Piano Duet)


오늘 함께 들어볼 곡은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입니다. 이 곡은 그 제목이 주는 비장한 무게감 때문에 자칫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슬픈 장송곡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아하고 담담하게 옛 추억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라벨은 생전에 이 제목을 붙인 이유를 두고 "그저 단어들의 울림이 좋아서"라고 아주 담백하게 답한 적이 있죠. 실제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16~17세기 스페인 궁정에서 어린 왕녀가 췄을 법한 느릿한 춤곡인 '파반느'를 상상하며 쓴 곡입니다.


라벨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초상화 속 왕녀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시대 특유의 고귀함과 정적인 분위기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특정 그림 하나를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화폭에 남은 먼 과거의 우아함을 음악으로 재현하려 했던 것이 이 곡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image.png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벨라스케스


이런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1899년 발표된 피아노 독주곡뿐만 아니라 라벨이 직접 편곡하여 발표한 피아노 듀오 버전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독주곡이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고 라벨이 직접 편곡한 오케스트라 버전이 호른의 서정성을 강조한다면 피아노 듀오 버전은 이 두 세계를 잇는 훌륭한 가교가 되어줍니다.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복잡한 내성부의 움직임을 두 연주자가 나누어 맡으면서 선율은 한층 유연해지고 중저음역대의 울림은 더욱 깊어집니다. 덕분에 관현악의 그윽하고 몽환적인 색채감을 피아노 건반 위에서도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이 듀오 버전만의 큰 매력입니다.


라벨은 이 곡이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거나 지나치게 느려지는 것을 무척 경계했습니다. 한 연주자가 너무 느리고 슬프게 연주하자 라벨이 다가가 "이 곡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느'가 아닙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죠.


결국 이 곡의 핵심은 슬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한없이 아름다운 지난날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그런 감정일 것입니다.




지난주, 외할머니께서 소천하셨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들으며 할머니와의 추억을 적어 내려갔던 날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네요.


설 명절에 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진통제 기운을 빌려 조금 기운을 차리신 듯했지만, 곁에서 뵌 할머니는 정말 한 줌밖에 되지 않을 만큼 야위어 계셨습니다. 할머니 귓가에 대고 크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민지예요." 그 목소리를 알아들으셨는지 할머니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 주셨습니다. 백발에 하얀 피부가 유난히도 고우셨던 우리 할머니.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살살 어루만지며 그때는 마지막이었는지 몰랐던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명절이 지나고 하루 뒤, 할머니는 평안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일곱 남매와 자부, 사위, 열두 명의 손주, 그리고 증손들까지 모두의 배웅을 받으시며 오래 아프지 않으시고 봄이 찾아오는 따뜻한 길목에서 길을 떠나셨습니다.


오늘 저는 할머니를 배웅하며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떠올립니다. 라벨이 말했듯, 이 곡은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먼 과거의 우아함을 기리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슬픔에 매몰되기보다는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한없이 아름다운 지난날의 풍경을 바라보듯 고우셨던 할머니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마음으로 매만져봅니다. 이 브런치북에 할머니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할머니와의 추억에 공감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오늘도 함께 듣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문사진 - Spring, Fruit Trees in Bloom by Claude Monet)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