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접할 수 없는 그녀의 책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책 제목부터 너무 멋지다. 강렬한 오렌지색 배경에 굵고 큰 하얀색 글씨가 작가의 당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턱을 살짝 들고, 한 손은 시크하게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하얀색 꽃을 들고 당당하게 걷는 그녀. 이 책은 브런치 필명부터 느낌이 팍 오는 '고추장와플' 작가의 책이다.
강렬한 앞표지와 상반되는 뒷표지를 보자.
벨기에인과 결혼한 참하고 신비로운 동양 여자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남편 등 뒤에 숨기보다 당당히 앞에 나서서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일을 이 나라의 언어로 하는, '국제결혼을 한 여자'가 아니라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만약 한국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면 이런 마음이 덜했을까.
아니, 어디에 살든 누구와 결혼했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자'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동일했을 것 같다.
제목에는 '상여자'라는 워딩이 있는데, 뒷표지에는 '여자'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책에 앞표지와 뒷표지가 있듯이, 사람도 처음 보이는 겉모습과 그 안의 속모습이 있다. 그녀의 겉모습은 '벨기에인과 국제결혼을 한 한국 여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을 선택해 용감하게 이역만리 벨기에로 날아가,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하며 '나, 송영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있다. 여기에 두 아들을 키워내는 강인한 엄마의 삶까지 더해져 있다. 한국에서 살아도 워킹맘은 극한 직업인데 말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남편과의 연애사, 벨기에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막막함, 이후 치열하게 부딪히며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재 학술도서관의 사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다. 놀라운 점은 임신과 출산, 육아가 이 모든 과정과 별개가 아니라, 한 타임라인 안에서 동시에 휘몰아치듯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사실 내심 고추장와플 작가님과 내가 비슷한 구석이 많고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육아관과 가치관이 일치했고, 당당하고 굳센 성격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우리 둘을 모두 아는 브런치 글벗님들이 "두 사람의 결이 비슷하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로지 피아노라는 한 길만 걸어온 나를 보고 주변에서는 멋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로 인해 내 인생이 우물 안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내가 가져본 직업은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선생님이 전부다. 대학생이 된 이후 아르바이트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늘 피아노 레슨이었으니까. 또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긴 했지만, 다양한 전공이 섞인 곳이 아니라 오로지 예술인들만 모여 있는 환경이었기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날 기회도 드물었다.
반면 그녀는 공장 노동자, 미국 회사 직장인, 박물관 보안 직원, 외국인 관리청 공무원, 시립 수영장 계산원, 빈민가 도서관 사서, 구립 도서관 사서를 거쳐 현재 학술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이게 다 가능한 일인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책으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어린 아기를 안고 대학원 공부를 하고, 아들을 '칭챙총'이라 놀리는 친구들을 참교육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문화 전도사가 되었다가, 소눈을 한 벨기에인 드러머 남편도 살뜰히 챙긴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아들과 함께 자전거로 유럽을 누비고, 멋진 이탈리아 친구와 파리 여행을 즐기며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쓴다.
아아, 이 모든 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역시 책을 읽어보시라. 그리고 그녀의 브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