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세상에 건네는 유쾌한 타건: 볼컴의 뱀의 입맞춤

William Bolcom 'The Serpent's Kiss'

by 에리카

창밖은 만물이 생동하는 눈부신 봄인데 요즘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풍경은 이 찬란한 계절과 참 많이 다릅니다. 뉴스를 켤 때마다 세계 곳곳에 짙게 깔린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빈부의 격차 그리고 잊을만하면 우리를 경악하게 만드는 반인륜적인 범죄 소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살다 보면 가끔은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습니다. 봄꽃은 어김없이 피어나는데 세상의 온도는 여전히 차갑네요.


저는 오늘 우리에게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해 줄 숨구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음악이 주는 유머'에 흠뻑 빠져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려 합니다.


ClassMates Piano Duo


오늘 함께 들으실 곡은 미국 작곡가 윌리엄 볼컴 (William Bolcom)의 피아노 모음곡 '에덴동산 (The Garden of Eden)' 중 세 번째 곡인 '뱀의 입맞춤 (The Serpent's Kiss)'입니다. '볼컴'이라는 이름, 어쩐지 낯이 익지 않으신가요? 이 브런치북에서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곡, 아름답고도 우수 어린 래그타임인 '우아한 유령 (Graceful Ghost Rag)'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죠. 그 아름다운 선율을 다시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


https://brunch.co.kr/@pfminji/174


'우아한 유령'이 진한 그리움과 서정성을 담고 있었다면 오늘 나눌 곡 '뱀의 입맞춤'은 완전히 다른 매력을 뿜어냅니다. 성경 속 창세기의 이야기를 지극히 미국적인 장르인 '래그타임 (Ragtime)'으로 비틀어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작곡가가 의도한 유머입니다. '래그 판타지 (Rag Fantasy)'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에서 뱀은 공포스러운 괴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래그타임 특유의 통통 튀는 당김음과 스르륵 미끄러지는 듯한 반음계적 선율을 타고 다가와 화려한 언변으로 하와를 꼬드기는 능글맞고 매력적인 사기꾼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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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곡의 백미는 20세기 초 미국 연예 쇼인 '보드빌 (Vaudeville)'의 코미디 요소를 클래식 무대 위로 끌어들인 파격적인 퍼포먼스에 있습니다. 구두 굽으로 무대 바닥을 구르고 엇박자에 맞춰 혀를 쯧쯧 차고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탁탁 두드리는 동작들은 클래식 연주회 특유의 엄숙함을 한 방에 무장해제 시킵니다. 그리고 퍼포먼스와 함께 건반 위를 쉴 새 없이 내달리던 두 피아니스트는 어느 순간 연주를 멈추고 관객을 향해 제4의 벽을 깹니다.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리듬은 더욱 잘게 쪼개지며 마치 통제할 수 없는 광기 어린 축제처럼 몰아칩니다. 성경의 맥락에서는 선악과를 베어 무는 비극적인 타락의 순간이겠지만 볼컴의 음악 안에서는 그저 연주자와 관객 모두의 심장 박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짜릿하고 유쾌한 피날레일 뿐입니다.


지금, 제 브런치에서 이 음악을 듣고 계시는 이 시간만큼은 바깥의 현실은 잠시 잊고 피아노가 건네는 유쾌한 농담에 마음껏 웃으시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좋은 주말 보내세요!!


(대문사진 - Snake Tempting a Woman with an Apple by CSA Images)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