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Duet from Delibes 'Lakmé'
꽃봉오리가 앞다투어 터져 나오는 이 계절이 되면, 제 귓가에는 늘 하나의 선율이 맴돌곤 합니다. 프랑스 작곡가 레오 들리브(Léo Delibes)의 오페라 <라크메(Lakmé)> 1막에 등장하는 ‘꽃의 이중창(Flower Duet)’입니다.
오페라 <라크메>의 배경은 19세기 영국 통치 하의 인도입니다. 주인공 ‘라크메’는 힌두교의 고결한 무녀로 점령군인 영국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신성한 사원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갑니다. 그녀의 아버지 닐라칸타는 영국군을 향한 깊은 적개심을 품고 있었지요.
본격적인 비극이 시작되기 전, 1막에서 라크메는 하녀 말리카와 함께 배를 타고 강가로 나갑니다. 이때 흐르는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이중창, ‘자스민이 울창한 돔(Dôme épais, le jasmin)’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하얀 자스민과 장미 넝쿨이 아치형 돔을 이룬 강변을 배경으로 두 여인의 목소리는 마치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듯 포개어지며 투명하게 울려 퍼집니다.
흔히 이 작품을 ‘오페라 코미크(Opéra Comique)’라 부릅니다. ‘코믹’이라는 단어 때문에 즐거운 희극을 상상하기 쉽지만 사실 이는 음악 사이에 연극처럼 ‘대사’가 들어가는 프랑스 오페라의 한 형식을 뜻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토록 아름다운 이중창 뒤로 오페라는 지독한 비극을 향해 달려갑니다. 라크메는 영국군 장교 제럴드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고 결국 종교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스스로 독이 든 꽃잎을 삼키며 생을 마감하게 되니까요.
자, 이제 오페라 공연으로도 감상해 볼까요?
지금 보고 계신 영상의 연출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연출가 로랑 펠리는 오페라가 가진 오래되고 틀에 박힌 전통들을 거부합니다. 그는 무대 위의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그 자리를 날카로운 상징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채웁니다. 인도라는 배경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대신 종이나 천 같은 절제된 소재를 활용해 인물들이 처한 심리적 고립과 문화적 충돌을 아주 서늘하고도 아름답게 시각화합니다.
로랑 펠리의 특별함은 그가 연출가인 동시에 뛰어난 의상 디자이너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음악의 질감을 천의 질감으로 치환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꽃의 이중창’이 흐를 때, 그가 설계한 의상의 선과 무대의 여백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눈앞에 실체화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의상과 더불어 그만의 특유의 초현실적인 미장센은 제국주의의 비정함과 그 틈바구니에서 스러져가는 개인의 고독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꽃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만발하는, 짧아서 더 소중한 봄입니다. 잠시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산책을 즐기실 때 이 우아한 선율을 때로는 투명한 피아노 듀오로, 때로는 다정한 목소리로 귀에 담아보세요.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선율을 따라 걷다 보면 발걸음마다 향긋한 꽃내음이 스며드는 기분 좋은 동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