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마음껏 아파하고자 쓰는 글

by 제제파파

이른 새벽.


2시간가량 잠이 들었을까.

평소라면 오지 않을 시간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의 전화.

세게 틀어 놓은 에어컨 바람 때문이었을까.

왜 이 시간에 전화가 왔을지 너무도 쉽게 예상이 되어서였을까.

괜히 온몸에 털이 서는 기분이었다.

핸드폰에 찍힌 엄마의 전화를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벨소리가 끊어지고 곧이어 도착한 문자.


"할머니 돌아가셨다"


딱 그 한 문장에 사람들이 말하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빠르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연락을 하고,

일들을 전화로 인수인계 하고,

제제를 맡기기 위해 연락을 했다.

준비를 마치고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건강하셨던 할머니의 사진이 어색하게 제단 위에 놓여 있었다.

마음 정리가 되기도 전에 옷을 갈아입고, 제사를 지내고, 장손으로서 상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입관 전 날임에도 많은 분들이 문상을 와주셨다.


다음날.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입관식이 시작되었다.

너무 슬퍼하면 영혼이 떠나지 못한다는 미신 때문에 계속해서 참아왔던 눈물이, 할머니 얼굴을 보자마자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장례식 내내 절대 울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 이다지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에, 너무나도 무색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준비했던 말들이 새하얗게 변해버렸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은 그것뿐이었다.


"할머니,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입관식을 마치고, 완장을 차고, 다시 상주석에 앉아있었다.

쏟아냈던 눈물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탓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빈속에 약을 쑤셔 넣었다.


멍하니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볼 수 없구나, 우리 할머니는 이제 기억으로만 남는 거구나.

그때부터 실감이 나기 시작해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조문객을 맞이하기를 반복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또다시 다음날.


두 시간 정도 잤을까.

새벽부터 발인식을 진행했고,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들고 화장장으로 이동했다.

차 안 맨 앞자리에 앉아, 멍하니 밖만 보고 있었다.

3일 동안 제일 많이 한 일이 멍하게 있기만 한 거 같다.


화장을 위해 들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또다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두 시간가량 지나고 유골함에 들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산소로 이동을 하고, 유골함이 안치되는 것을 보고 나서, 다시 영정사진을 들었다.

앞만 보고 걸어가기 위해 걸음 하나하나에 신경을 세웠다.

그래서였을까, 제일 뜨거웠던 날씨임에도, 더위를 많이 탐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하나도 덥지 않았다.

할머니랑 같이 있어서였을까.


그렇게 우리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났다.


정신없는 첫날.

당연히 무음으로 잠을 자고 있었을 너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했던 이른 시간 전화를 받아줬음에 신기했고, 흔쾌히 제제를 맡아주고, 나아가 그 이른 아침에 졸린 눈으로 삶아 준 달걀 3개에 마음이 또 한 번 저려왔었다.


회사에서 보내주신 생각도 못했던 근조화환.

할머니, 나는 인간관계가 좋지 않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꽤 잘 살아왔나 봐.

"I wish for your happiness"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할머니.

건장한 체격에, 키도 크고, 누구보다 건강하셨던 우리 할머니.

소파에서 뛰어놀면, 큰 소리로 혼내셨던 우리 할머니.

밥을 고봉밥으로 주고, 더 먹으라고 꼭 두 공기를 푸고 나셔야 마음이 편안했던 우리 할머니.

내가 드리는 돈은 한사코 거절하고, 오히려 자꾸 내 주머니에 뭔가를 넣어 놓으셔야 성에 차셨던 우리 할머니.

불편한 다리에, 내가 필요한 뭔가가 있으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찾아주셨던 우리 할머니.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면 쑥스러워하시면서도 꼭 웃음을 잃지 않았던 우리 할머니.

넘어질세라, 내가 조심히 붙잡았던 손을 기다렸단 듯이 끝까지 잡고 있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 얼굴 보면 이 말들이 하고 싶었는데,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 말도 못 했지 뭐야.

나는 있잖아 할머니.

처음으로 정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게 할머니 덕분이지 않을까 싶어.

아직도 가족한테는 무뚝뚝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은 아끼고 있는데, 그나마 할머니 덕에 그 선이 조금은 나아졌던 거 같아.

그래서 있잖아.

너무 고마워.

이제는 아프지 말고, 튼튼한 다리로 열심히 다니면서,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도 다 먹으면서 지내.

그러다가 힘들면 잠깐 앉아 쉬면서, 내 생각 조금만 해줘.

할머니는 생각할 사람들이 많잖아?

그니까 나는 많이도 필요 없으니까 잘 지내고 있는지 조금만 궁금해해 줘.

할머니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 열심히 살고 있을게.

많이 보고 싶을 거야.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돼.

미안하고, 고맙고, 많이 사랑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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