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

by 제제파파

꿈을 꿨다.


늘 그렇듯 꿈의 시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어느 실내에서,

큰 가방을 하나 짊어졌고,

그 안에 중요하다 생각한 것들을 넣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제제도 그 가방에 넣었다는 것.


그렇게 밖으로 이동했고,

한참을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버스 정류장.


익숙하다는 듯 버스에 올라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다급하게 하차 벨을 눌렀고,

버스가 서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불안감의 원인을 알았다.

제제가 사라졌다.


다급하게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했고,

통화 속 상대방에게 제제가 없어졌는데 혹시 거기에 있냐고 물었고,

돌아온 답은 "이곳에 없다."였다.


머릿속이 하얘짐과 동시에 주변을 둘러봤다.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동네, 건물들, 길거리,

그리고 시대와 맞지 않는 사람들의 옷차림.

나도 모르게 그 눈에 익은 길을 곧장 출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내가 어릴 적부터 20년을 넘게 줄곧 지나다녔던 골목길,

공사로 빌라가 되기 전의 주택,

몇 년 전, 이사를 가시기 전의 할머니 집.


뛰어넘다 걸려 넘어져 아직도 몸에 상처를 남긴 큰 은색 대문,

그 대문을 지나 뭘 심는지 알 수 없었던 양쪽의 화단,

그 화단 중간에 간단히 손을 씻었던 수돗가,

그리고 그 수돗가를 지나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할머니집 계단.


계단을 반쯤 오르자 현관이 보였고, 그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제제가 얼굴로 현관문을 열면서 반겨주었고, 안도감을 느끼며 쓰다듬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그 문을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정신없이 뛰어 들어가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할머니가 큰 솥에서 그릇에 국을 덜어주시고 계셨다.


"왔냐? 빨리 앉아."


그제야 알았다.

아, 이거 꿈이구나.

꿈이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주변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벽이 무너지고,

현실의 몸속 심박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마음이 다급해진 난 입관 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최대한 할머니가 다 알아들으실 수 있게, 내 말들이 온전히 전달이 될 수 있게 자세를 낮추고 오열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확실한 건 그때 하지 못한 말들을 전부 쏟아내듯이 전달했다는 것.


거의 모든 벽이 무너질 때쯤 난 할 수 있는 말들을 다 전달했고,

그제야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서 나를 똑바로 보기 시작했다.

마치, 이게 다 꿈이란 걸 나와 같이 인지한 듯이.


그렇게 꿈에서 깼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안도감과 후련함에 몸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 편하라고 꿈에 나와서 얘기만 들어주고 가신 건지, 왜 또 내 밥상만 차려주고 가신 건지,

한참이나 나타나지 않다가 왜 이제야 나온 건지,

뭐 하나 제대로 알진 못했지만,

5개월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진 느낌에 또 나만 무언가 받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건,

꿈이 붕괴되기 직전,

할머니가 나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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