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처음 생길 때부터 봉사하던 대학생이 있었다.
그 녀석이라고 부르겠다. 그 녀석은 성실했다. 그리고 내가 귀찮아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다 해주었다.
봉사자들이 못 오게 되는 날도 학교 수업이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시간이 많다고 스스로 지원을 해 대신 봉사도 해주었다.
그리고 올해 2월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졸업 선물로 소주 한잔을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졸업 후에 그 녀석은 나와 인사도 못하고 박물관을 떠났다.
여름이 시작되는 장마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전에 난 박물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내 핸드폰에는 카톡이 없다. 사무실 컴에서만 일 때문에 카톡을 한다. 사무실 컴에 나를 찾는 메시지가 왔다.
그 녀석이었다.
인사를 하러 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어 그 녀석을 만났다.
난 점심시간에 그 녀석을 위해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소주를 시켜 잔만 따르고 오래된 벗 인양 반가움에 그 녀석과 치어스를 외쳤다. 정말 사주고 싶었다.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녀석은 졸업한 다음날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서울 본사 근무가 아닌 지방근무를 선택했다.
개발자인 그 녀석은 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과 실천에 대해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문학소년이 되고 싶은 그 녀석에게 첫 번째 실천은 지방에 내려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정리하고 미래를 위해 잠깐의 자유를 통제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개발자와 문학소년과의 관계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문학소년과의 자유의 통제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서울에서 준비하는 과정보다 지방에서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좋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마워했다. 일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도 만들고 책으로 출간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 녀석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계획을 세우고 생각만이 아닌 실천을 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부담도 느껴졌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룬 것은 아니고 아직도 뜻대로 잘 되지 않아 혼자 끙끙거리고 있지만 암튼 그동안의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는 생각과 과거의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난 소주잔을 짠! 하면서 응원한다고 말했다.
젊다는 건 모험을 할 수 있는,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 같다.
난 그 녀석을 위해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