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발견한 내 모습

by B디자이너 지미박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워낙 유명한 고전.


어릴 적 읽은 적이 있었나 가물가물하던 차에 우연히 집어 들었고 푹 빠져서 읽게 됐다. (내용을 기억 못 하는 걸 보니 읽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


산드로라는 허구의 인물이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청새치와 상어들과 벌이는.. 즉, 자연에 굴하지 않고 싸우는 서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미 고전으로서 수많은 감상평이 있을 테니 똑같은 내용 반복은 저리 치워버리고, 필자가 읽으면서 나에 대해 한 가지 느낀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극 초반? 중반?쯤 산드로 할아버지는 거대한 물고기가 자신의 낚싯대에 걸린 것을 인지한다.


거의 5~6미터나 되는 엄청나게 큰 청새치.


사실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그 크기에 대해 감이 오질 않아 유튜브와 이미지를 검색해 보았더니 정말 후덜덜한 크기다.


구글에서 찾은 대형 청새치 사진


산드로 할아버지는 초반 청새치를 직감했지만 (필자의 기억에) 약 하루 넘게 바닷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혹시 산드로 할아버지가 거대한 청새치와 싸우고 있다는 게 착각 아닐까‘



사실 찌가 걸려있던 것은 바닷속에 바위나 혹은 난파선에 잔해물 아니었을까 잠시 상상했다. 그리고 그게 8~90일여만에 만난 물고기라는 사실에 할아버지의 판단력이 흐려진 개 아닐까 싶었다.


분명 이는 과도한 설정이다. 그리고 무언가 반전을 기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대 웬걸.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낸 청새치는 실제로 산드로 할아버지 낚시에 걸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요즘 콘텐츠들 아니 내가 보고 듣는 콘텐츠들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의 뇌는 산드로 할아버지의 지난한 과정보다는,


무언가 극적인 설정, 획기적인 스토리를 더 갈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뇌가 이렇게까지 절여져 있다는 것이 좀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어쨌든 엄청난 반전과 자극적인 설정이 아니더라도 그 과정과 서사만으로도 노인과 바다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


산드로 할아버지처럼 나도 나만의 길로 나만의 확신으로 거대한 벽에 맞설 수 있을까. 그 누가 뭐래도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다.


누군가는 허구의 인물과 설정이라는 점에서 평가절하하는 것도 같지만, 실존 인물이 아닌 허구면 어떠랴. 배울 점이 있고 귀감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산드로 할아버지 나이쯤 됐을 때 다시 한반 읽어보련다.


나도 나만의 청새치를 발견했을 테고 상어와 거친 바다에서 열심히 싸웠을 내 서사를 돌아보면서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중의 반응을 제대로 살핀 MG새마을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