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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년 만에‘는 명분이 될 수 있을까?

숱한 디자인 변경 소식에 대한 단상

by B디자이너 지미박

필자는 브랜드 디자인, 마케팅 등을 업으로 하면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의 시작과 기존 브랜드의 리뉴얼 등을 목격하게 된다.


그중 브랜드 리뉴얼, 디자인 변경, 디자인 교체, 디자인 개선 등의 비중이 아마 가장 많지 않을까 싶은데,


최근 리뉴얼 소식들을 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바로 00년 만에.


필자가 몇 개만 모아본 것


5년 만에, 7년 만에, 10년 만에, 20년 만에 등등


이제는 뭐 10년 정도 미만은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세월과 전통이 쌓인 (혹은 낡은) 브랜드들이 수두룩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업에서도 수년 전부터 몇 차례 CI 교체를 검토하고 논의한 바 있다.


사실 2~3년 주기로 항상 나오는 얘기.


정답은 없지만 전략은 있어야 하니, 어떻게 하면 정체되어 보이고 낡게 인식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리프레시 할지 항상 고민하게 되는 건 브랜드의 숙명 같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어쨌든 현재 CI는 약 14~15년쯤 된 것 같은데 (사실 초반에 한두 차례 튜닝이 있었기에 정확한 연수를 가늠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이런 적지 않은 기간임에도 최근에 마쯔다의 무려 28년 만에 로고 변경 등을 보니 14-15년쯤이 큰 형님 소리 듣기도 쉽지 않은 듯하다.


사실 ‘00년 만에 ’ 관련해 생각을 한 번쯤 깊게 해보게 된 이유는, 단순히 세월의 기간보다는 그 내포된 의미 때문이었다.


필자만의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00년 만에‘ 속에 담긴 의미는 주목도를 위함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일종의 방어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왜 바꾼 거야? 난 원래가 더 좋은데‘, ’‘바꾼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자주 바꾸는 거 아닌가?‘ 등등의 의문을 갖는 대중으로 하여금 가장 손쉬운 명분이 되는 듯하다.


”차 아직 쌩쌩한데 왜 샀어?“

“5년 만에 바꿨어”


“롱패딩 또 샀냐?”

“2년 만에 새 옷 사는 거야“


비유가 아주 적절하진 않지만, 분명 ‘00년 만에’, 혹은 ‘00개월 만에’는 명분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디자인 개선, 변경 등의 명분이 단순히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일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수반되는 명분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보조적인 요소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00년 만에‘가 아닌 ‘00년이나’도 많이 회자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 사용한 것은 그만큼 스토리와 헤리티지가 쌓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기업이나 브랜드나 사람이나 고유하게 쌓아 온 시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지키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문득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디자인, 로고 하나가 떠올랐다.



전설적인 폴 랜드(Paul Rand) 선생님의 디자인.


그리고 더 멋진 부분은 IBM 공식 웹사이트에 적힌 문구다.



Created by legendary designer Paul Rand, the basic design of the IBM logo has remained unchanged since 1972.

전설적인 디자이너 폴 랜드가 만든 IBM 로고의 기본 디자인은 1972년 이후로 변함이 없습니다.


주책맞게 이런 부분에서 혼자 감동하고 있지만 정말 심금을 울린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철학을 가진 기업이 많아지길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논평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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